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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싸움에 하룻밤 새 사라진 복지예산 700억

중앙일보

입력

새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당초 정부안보다 사회복지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간 정치적 힘겨루기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애꿎은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복지분야 예산이 깎였다는 지적이다.

국회는 27일 새벽 본회의에서 163조3500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일반회계+특별회계)을 처리했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일반회계(158조원)와 특별회계(6조7000억원)를 포함한 총 164조7000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1조3500억원 순삭감한 것. 이 같은 삭감폭은 국회 예산안 심사이래 최대 규모다.

이에 따라 일반회계는 당초 158조원에서 1조4600억원 감액된 156조5400억원으로 확정됐다. 총지출(일반회계+특별 회계+기금)규모는 당초 238조5000억원보다 3조1000억원 줄어든 235조4,000억원으로 정해졌다.

◇“88개 복지시설 사라져”=복지예산도 상당수 줄었다. 독거노인 도우미 파견사업 예산 176억원 등 노인예산 관련 603억원이 삭감됐고, 장애인주민자치단체센터 도우미 사업 예산 25억원 등 장애인 관련 예산 32억원이 줄어 들었다. 이밖에도 아동복지 예산 삭감 등을 포함해 총 678억원이 하룻밤 새 사라졌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복지예산 삭감으로 인해 복지혜택을 빼앗긴 소외계층이 총 1만명에 이르고, 신축 예정이던 복지시설 88개소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노 의원에 따르면, 독거노인 도우미 파견사업 예산이 176억 삭감되면서 도우미 숫자가 2800명 줄었고, 고용기간도 당초 9개월에서 7개월로 2개월 감소했다. 노인 돌보미 바우처 예산도 68억원이나 삭감돼 7300여명의 소외노인이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됐다. 노인수발보험 시범사업 예산도 19억원이 삭감돼 2개 지역이 사업에서 제외되게 됐다. 이밖에도 노인생활시설 기능보강을 위한 149억원, 소규모 다기능시설 신축 142억원, 노인 그룹홈 신축지원 15억원 등이 각각 삭감됐다.

장애인 관련 예산도 소폭 줄었다. 특히 장애인주민자치단체센터 도우미 사업 예산 74억원 중 25억원이 삭감돼 600명의 도우미가 감소했고, 고용기간 역시 2개월(9개월→7개월) 짧아졌다. 또한 아동복지, 모부자 예산이 각각 36억원, 8억원씩 줄었다.

◇스스로 약속 어긴 국회=새해 예산에는 국가예방접종관리사업 예산 458억원이 끝내 포함되지 않았다. 458억원은 내년 7월부터 실시키로 한 만6세 이하 아동의 무료예방접종 확대사업에 필요한 돈이다. 지금은 보건소에서만 무료로 국가필수예방접종(11종 전염병, 7종 예방접종백신)을 실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무료예방접종 확대사업을 국회에서 결정했다는 점이다. 지난 8월말 국회는 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무료예방접종 범위를 보건소에서 일반 병의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도 내년 7월이면 동네병원에서도 무료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알려왔다. 하지만 결국 국회는 새해 예산심의에서 스스로 결정한 사업의 예산을 삭감함으로써 그 시행을 막은 셈이 됐다.

병원 무료예방접종의 내년 시행이 어려워지자 국회와 복지부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빠졌다. 국회 복지위 소속 의원들은 공공연하게 “담뱃값 인상을 전제로 짠 복지부 예산안부터 잘못 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 역시 ‘관련법을 국회가 통과시킨 만큼 예산확보까지 함께 책임져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겨지게 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당초 병원 무료예방접종이 시행되면 현행 70%에 머물고 있는 예방접종률이 획기적을 개선되고, 약 45만8000원씩 부담하던 가계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 모든 게 2008년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여성가족부 예산 1조원시대=반면 여성가족부의 내년 예산은 대부분의 항목이 증가하면서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8749억원보다 30.1% 늘어난 1조1379억원.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여성의 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지역여성 일자리 창출 및 지역여성 인적자원개발 활성화에 4억원이 새로 책정됐다.

보육료 지원을 확대한 것도 눈에 띤다. 그동안 저소득층 위주로 지원해왔던 차등 보육료를 도시근로자가구 월평균소득 100%까지 확대했다. 이로써 올해 41만명에서 내년에는 56만명이 보육료 지원혜택을 받게 됐다. 예산도 2733억원에서 4096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민간보육시설의 서비스 질을 개선하고 부모의 보육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본보조금 지원도 올해(942억원)보다 많은 1356억원으로 늘렸다.

보육시설 수준을 높이고 부모들의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한 평가인증제도(32억원)도 강화키로 했다.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국공립 보육시설 112개소와 장애아 전용 보육시설 10개소를 신축하기로 하고 여기에 332억원을 투입한다.

여성가족부 김창순 차관은 “예산 1조원시대 개막은 우리 사회가 취약계층과 여성에 대한 지원, 아동양육 및 가족문제 등을 단순한 복지의 개념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된 결과”라고 밝혔다.【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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