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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야간고 … "부모 자식처럼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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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청소년 푸른성장대상을 받은 부천실업고 이주항 이사장(오른쪽 둘째)이 실습실에서 이태영, 강맹성, 양성호, 윤석군(왼쪽부터)에게 기계 작동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일하는 아이들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도록 계속 돕겠습니다."

근로청소년을 위한 학교인 부천실업고등학교가 '제2회 청소년 푸른성장대상'의 복지부문 수상단체로 선정됐다. 1990년 공장건물에서 시작한 작은 야학교가 정규 학력을 인정받는 어엿한 평생교육시설로 자리 잡은 것은 17년간 학교를 지켜온 이주항(45) 이사장의 열정과 고집 덕분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이 이사장이 학교 설립을 결심한 것은 고교를 중퇴하고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학생들을 만나면서다. "좋은 교육공간을 만들어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이 이사장의 생각에 아내 박수주(45.수학 교사)씨도 흔쾌히 동참했다. 두 사람은 대학 1학년 때 야학 모임에서 만나 결혼했다.

부부는 모아놓은 돈과 전세금까지 털어 부천시 고강동 건물 2, 3층을 임대해 학교를 세웠다. 옥상에서 체육수업을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찾아왔다.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거나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하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이 이사장은 "학력 인정도 안 되는 학교에서 함께 부대끼며 부모 자식처럼 살았다"며 "끝까지 남은 24명이 참석한 제1회 졸업식은 눈물바다였다"고 회상했다.

96년 지금의 부천시 오정동 공장지대로 이사온 뒤 97년엔 학력인정 학교로 지정됐다. 그러나 전교생 120명의 소규모 운영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단순한 학교가 아닌 '생활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혼과 가정폭력 등으로 가족이 붕괴돼 불안정한 아이가 많아요. 가족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전교생 중 절반 이상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고 16명의 교사가 돌아가며 밤새 기숙사를 지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과정도 입시 과목이 아닌 철학.목공예.도예.글쓰기 위주로 구성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소개해 준 인근 공장에서 휴대전화 조립 등의 일을 하고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이 이사장은 "아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아침에 직장을 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잘것없는 공간이지만 계속 해볼 만하다'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졸업생들의 결혼식 주례 요청이 쇄도하는 것도 그에겐 즐거운 일이다.

야간학교가 대부분 사라지고 주간으로 바뀐 요즘, 근로청소년을 위한 순수 야간고등학교는 부천실업고가 유일하다. 이 이사장은 "일하는 아이들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야간을 고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가청소년위원회와 중앙일보, MBC가 공동 주최한 '제2회 청소년 푸른성장대상'은 청소년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온 개인과 단체에 수여된다. 부천실업고 외에도 청주소년원 반길환 원장(정책.개발 부문), 경남 남지고 제갈경 교사, 청수사 주재분 주지(활동 부문), 한국늘사랑회 김상기 이사장(복지 부문) 등 총 5명이 수상한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4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다.

한애란 기자<aeyani@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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