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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민주화 하자면서… /신성순(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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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균관대학교에서 일어난 사제간의 폭행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제자가 스승에게 주먹질을 했다는 패륜 때문이다.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아서는 안된다는 전통적인 도덕관념이 살아있는 우리사회에서 최고의 지성을 연마한다는 대학생이 다른 곳도 아닌 학문을 전수받는 대학구내에서,그것도 버젓이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교수에게 폭행을 했다니 기가 찰 노릇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사건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 이 사회가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관계에 대해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싫든좋든 다른 사람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를 이루고 살게되어 있다.
사회를 이루고 살 수 밖에 없다는 숙명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그가 속한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의 틀에 의해 자유를 유보당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를 속박하는 틀이 바로 규범이다.
규범은 사회의 필요에 따라 도덕의 형태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법률의 형태를 띨 수도 있는데 사회공동의 질서와 이익을 위해 강제로라도 실현시키기로 한 규범이 법률이라고 교과서는 가르치고 있다.
과거 우리사회는 군사부일체라는 유교 도덕률이 보여주듯이 스승을 부모보다도 중히 알아야 한다는 엄격한 규범의 지배를 받아왔다.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지금은 스승과 제자사이의 특별한 관계는 법률의 보호밖으로 밀려났지만 아직도 스승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관념은 도덕률로 이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다.
성균관대학교 사건은 바로 이같은 도덕감정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사회의 지탄을 면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또하나의 문제점은 학생들이 보여준 질서의식의 부재다.
일방통행을 무시하고 차를 몰았다는 것은 물론 전통적인 도덕률과는 무관하다. 일방통행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통규칙이나 담배꽁초를 길에 버리고 침을 함부로 뱉어서는 안된다는 등의 공중도덕이 인간의 본성에 연계된 가치관이나 도덕관념에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여러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데서 있기 쉬운 불필요한 마찰과 불편을 줄이고 좀더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을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기술적 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이 선생을 때렸다는 사실에 비하면 규범의 등급에서 훨씬 하위에 속하고 그런만큼 이번 일을 논하는데서도 이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이런류의 규범이라고 해서 가볍게 다루어질 일은 아니다.
지금과 같이 인구가 도시에 집중되고 생활이 시분을 계산해야 할 정도로 정밀해진 사회체제에서 사소한 규칙의 위반은 다른 사람에게 예상밖의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화라는 것이 나의 권리 못지않게 다른사람의 권리를 존중하고 피차 합의에 의해 정한 룰을 서로 지키면서 사는 사회를 표방하는 것이라면 규칙을 지킨다는 일은 민주사회를 이룩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기본적 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규칙은 농경사회에 뿌리를 둔 전통적 규범은 아닐지 몰라도 새로 등장한 민주사회·산업사회에서는 전통적 규범에 못지않은 중요성과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민주사회·산업사회의 기본적인 요구가 시대의 앞장을 서야 할 학생들에 의해 아무 가책도 없이 저질러졌다는 데 이번 사건이 안고 있는 또하나의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성대생들의 행위는 전통적 가치관에서보나 새로 요구되는 민주적 시민의식의 차원에서 보나 어느 한곳 용납되기 어려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들의 행동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더 한심한 것은 이같은 작태가 비단 이들 학생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사회 전체가 이 학생들과 같은 가치관의 혼동,질서의식의 부재속에 굴러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단 스승과 학생의 관계에서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부부와 형제,사용주와 피용자,상급자와 하급자 등 이 사회의 모든 위계질서와 인간관계가 뿌리째 흔들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법률적인 규범만 하더라도 세계 각국의 좋다는 제도를 모두 도입해다 놓았으면서 아무도 지킬 생각을 않은채 정부는 정부대로,기업은 기업대로,근로자는 근로자대로,학생은 학생대로 제각기 자기 주장과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입만 열면 누구나 민주화를 외치면서 막상 행동은 민주화는 거리가 먼 곳을 헤매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자리에서 그렇게 된 원인을 다져볼 여유는 없다.
그러나 그 책임을 젊은 학생이나 근로자들에게서만 찾아서는 안되고 이 사회를 이 지경으로 이끌어 온 기성세대들이 대부분의 몫을 안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기성세대를 매도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겠다고 앞장섰던,그리고 지금도 앞장서고 있는 대학생들에게서조차 새로운 질서구축을 위한 진지한 열의와 노력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대사건은 민주주의가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파괴하는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질서를 구축하고 그것을 지키는데서만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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