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낙타경주 어린이 기수 로봇으로 교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아랍에미리트(UAE)의 낙타 경주 장면. 체중이 적게 나가는 어린이들이 기수를 도맡아왔으나 앞으로는 로봇 기수가 대신한다. 어린이 기수에게 성장억제 호르몬 주사를 맞히고 인신매매가 잇따른다는 비판을 UAE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아랍에미리트(UAE)가 '어린이 인권 유린 국가'라는 오명을 벗게 됐다.

UAE 정부는 이달 중순 모든 낙타 경주에서 어린이 기수를 로봇으로 교체했다고 중동 지역 인터넷 미디어인 미들이스트 온라인 닷컴이 25일 보도했다.

UAE는 이미 18일 낙타 경주 기수로 활동했던 동남아 출신 어린이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900만 달러(약 84억원) 규모의 지원기금 창설 협약을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과 체결했다.

이 돈은 낙타 경주 기수를 했던 어린이 1000여 명의 사회 복귀 교육과 건강관리, 체불임금 지급, 귀국 등에 쓰일 예정이다.

지난해 5월 유니세프와 UAE 내무부가 체결한 '낙타 경주 어린이 기수 활용 금지 협정'에 따른 것이다.

수백 년 전통의 낙타 경주는 UAE에서 큰 인기가 있었으며, 낙타가 속도를 더 낼 수 있도록 체중이 적게 나가는 어린이들이 기수를 맡아 왔다. 문제는 경쟁이 심해지면서 최근 몇 십 년 사이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깡마른 어린이를 인신 매매해와 낙타기수로 훈련시키는 일이 성행한 것이다. 팔려 온 어린이들의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가두어 둔 채 밥을 굶기는가 하면, 성장억제 호르몬 주사까지 놓는 사례도 있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자 UAE는 1993년 어린이의 기수 활용을 법으로 금지했고, 2005년부터는 기수의 자격을 16세에서 18세 이상으로 올리고 체중이 45㎏ 미만인 기수의 출전을 금지하는 등 관련 규정을 대폭 강화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3년에는 유니세프가 어린이 기수 문제를 정식으로 문제 삼았다. 또 올 4월에는 UAE에서 낙타기수로 일한 어린이들의 부모들이 지난 30년간 낙타기수를 착취했다며 미국에서 두바이의 지도자 셰이크 무하마드 알마크툼 등 왕실 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자 고성장 속 국가홍보를 중시하는 두바이 왕족들을 중심으로 어린이 기수 고용을 완전 중단하는 결단이 이뤄졌다. 알자지라 방송은 "올해 두바이 왕실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이 사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