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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풍자 만화로 빛 봤어요"|『이야기 좀 합시다』펴낸|시사 만화가 임재학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야기 좀 합시다』
만화가 임재학씨 (42) 가 최근 내놓은 시사 만화집의 제목이다. 만화 제목치고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것들과는 유가 달라도 크게 다르다. 어찌보면 그 동안 내내 쳐닫아 두었던 얘기 보따리를 한번 속시원히 풀어내 보겠다고 자청해 나선 사람의 입내 같기도 하고, 혹은 방금 알은 체를 나눈 상대에게 말벗이나 돼주길 바라고 은근히 꾜드겨 보는 어투요, 수작 같기도 하다.
이야기라는게 최소한 2인칭의 상대 상을 상정하고서야 성립되는 것인데 그런 뜻에서 『이야기 좀 합시다』란 책제목이 갖는 가장 중요한 함의는 나의 원망이 됐든 상대에의 권유가 됐든 「언노를 틈」바로 그것일 터다. 『말 묻어두면 병난다』고도 하고, 『말 못하고 죽은 귀신』도 있다지만 역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처럼 인간과 사회의 온갖 병고를 다스려주는 만능의 카타르시스 치유제가 달리 있을 것인가.
임씨의 이 만화집에는 그가 지난 4년 동안 『주간 만화』 『매주 만화』등의 정기 간행물에 연재해 온 것들 가운데서 추린 29편의 단편 만화가 실려있다. 그것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3당 통합, 지방자치제, 우물안 개구리식의 체육 정책, 부동산 투기, 여성 문제, 미국의 시장 개방 압력, 난맥의 정치판, 물가 문제, 남북한 관계와 통일 문제, 교통 문제, 의원 세비 인상 등 그 동안 전국민적 관심 속에서 한자락씩 왁자하게 화제를 불러 모았던 것들이다.
극화체와 만화체를 절충한 반사실적인 선묘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 그의 시사 만화는 잘못 구워진 도자기 표면의 요철상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들과 함께 커트마다 새겨 넣고 있는 수철의 대사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가령 민초들의 슬기와 저력을 바탕에 깔면서 우리 나라의 정치적 운명을 매우 낙곽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는 「이 손 안에 있소이다」같은 작품이 그렇다.
『고, 집나간 정치를 찾습니다. 정치야, 모든 걸 용서할테니 돌아오너라. 국민이 위독하단다.』76커트 속의 끝머리 쯤에 대충 게시판을 하나 세우고 거기 천연덕스럽게 새겨 넣은 이 짤막한 세리후는 실종된 정치에 대한 풍자 혹은 통렬한 야유 정신의 압권이라 이를 만하다.폭력의 세계와 엇물려 민생 치안 부재의 한심한 세태를 그린 「신(신) 오단논법」의 첫 커트 대사는 또 어떤가.
『서민위에 태촌이, 태촌이 위에 꼴망이, 꼴망이 뒤에 국회, 국회 옆에 △찰, ○찰 위에 화성연쇄·‥.』
본격 성인 만화란 새 장르를 개척한 인물인 고우영씨는 『임재학의 단편들은 그저 한번 읽고 잊어 버릴 수 있는 소모성 작품이 아니다. 작가의 고심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작품을 다시 읽고 음미하게 만든다』고 치켜 세운다.
이게 의례적이고 괜한「추킴」이 아닌 것이 이 만화집 속에서 다루어진 화제의 이슈들이 실은 애초의 시점을 훨씬 지나「먼 과거의 일」이 돼버린 경우가 태반이고, 또 시사의 세계가 어차피 산문적인데다 건조해서 재미를 던져주기가 퍽 어려운 것임에도 임씨의 만화는 시공을 넘어 늘 대하는 사람의 배꼽을 빼게 만드는 신묘한 재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만화는 욕설이나 일상의 비속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으며 언제나 풍자와 비판의 시위를 늦추는 법이 없다. 그러나 남도의 판소리 가락 같은 걸쭉한 그 만화 대사 가운데서도 그는 어느 한 쪽의 논리에만 경도하는 편향성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것은 일종의 「균형잡기」로 불릴만한 무엇 일터인인데 『저는 치켜줄 것은 치켜주고 비판할 것은 비판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 문제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방관자의 자세로 오해 받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객관성을 잣대로 하여 명확하게 자기 의견을 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고 그는 말한다. 예를 들어 「국회 의원님 안면 화장중…」같은 작품이 보여주듯 그는 의원들의 비리를 다중의 세에 영합해 무조건 매도해서는 문제의 핵심을 겉돌게 된다고 본다.
그는 의원들이 비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구조 역학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문제에 접근한다. 『이것 저것 합쳐 월 3백여만원의 공식 수입 가지고 세금 떼고, 경·조사 부조금 자르고, 중앙당 회비 바치고 나면 벌써 3분의1 없어지고, 지구당 사무실 직원 봉급에 수도세·오물세·변소치는 돈·개떼 같이 몰려드는 손놈들, 차 대접해도 돈이고, 죽었다, 식올린다…, 부조금·조의금에 꽃다발·양초까지…』이런 식이다.
대구가 고향인 임씨는 엉뚱하게도 그림과는 인연이 먼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한 전력을 갖고있다.
70년대말 고향에서 「오비지매」를 짜 일본에 수출하는 조그마한 하청 업체를 경영하다 8천만원의 자본금을 홀딱 까먹은 뒤로 어릴적부터의 그림 재주를 살린답시고 80년대 초 만화계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그림이 아니라 스토리만 얽어 연출하는 콘티 작가로 출발했으나 「수중에 돈은 쏠쏠히 들어와도 이름은 묻혀버리고 마는 게 억욱해서」직접 그림까지 그리기로 결심했다. 『주간 만화』에 「이야기 좀 합시다」란 제목으로 10 페이지짜리 첫 작품이 실린 것은 87년 9월이었다.
한 때는 이현세·허영만처럼 극화 쪽에 뜻을 두고 작품을 만들어 본 적도 있지만 출판사쪽에서 자꾸만 이들의 아류를 요구해 그만두고 시사 만화로 돌아섰다고 한다.
『제 작품이 괜찮은 평가를 받게된 건 성역에 속했던 정치권에 대한 풍자가 허용될 즈음에 시사 만화를 시작했고, 「주간만화」쪽이 과감하게 그걸 받아 실어 주는 안목을 발휘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도하의 모든 일간지와 통신·잡지·단행본을 훑고도 모자라 곁에 전용 리포터까지 두고 있는 그는 『좀처럼 엽서를 쓰지 않는다는 교수·의사·법조인·대학생 등 여론 형성층의 격려 팬 레터를 받을 때마다 만화가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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