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칼럼

대통령의 '막말' 대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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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나라 돌아가는 게 "과연 정부가 있기는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혼란스럽다. 대통령의 "막말"소동은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이러다가는 남은 임기 1년이 무정부 상태로 치닫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말 노 대통령은 아무도 못 말리는 최고수 "말썽꾸러기"다. 시빗거리를 만들고 갈등을 확산시키는 데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엊그제만 해도 반값 아파트가 어떻고, 내년 경기가 어떻고 하며 경제문제가 최대 관심사였으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그런 논의는 하루아침에 쏙 들어가고 대통령의 막말 시비에 온 나라가 흉흉하다.

허구한 날 나라의 최고 어른이 심한 구설에 올라 이처럼 곤욕을 치르니, 정상적인 통치는 이미 물 건너 갔다. 무정부 상태를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쯤 해서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접는 게 좋겠다. 하긴 이런 소동을 처음 겪는 일도 아니지 않는가. 걸핏하면 벌어지는 대통령의 막말 소동인지라 웬만큼 면역이 될 때도 됐다. 대통령의 흥분은 막을 방도가 없으니, 국민이라도 차분해지려고 노력하는 수밖엔 없다.

사실 노 대통령도 집권 초기에는 자신의 말투로 고민을 많이 했다. 장고 끝에 자신의 본래 스타일 쪽을 택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도 결코 단순한 말 실수가 아니다. 말을 아예 안 한다면 모를까, 일단 했다 하면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직설화법이 노 대통령으로서는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더구나 이번에는 애당초 화풀이를 한바탕 하기로 작정했던 연설이었던 만큼, 그 파장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노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자신의 스타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다. 포기는커녕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미뤄 볼 때 위기에 몰리면 몰릴수록 노무현 스타일을 더욱 강하게 연출할 것이다. 따라서 제2, 제3의 막말 소동은 남은 임기 1년 동안 언제 어디서든지 수시로 발생할 수 있음을 미리 각오해야 한다.

'막말'에 대처하는 적절한 처방은 없을까. 우선 대통령의 말에 국민이 좀 둔해질 필요가 있다. 공연히 민감하게 반응해 봤자 국가적으로 에너지 낭비다. 대통령을 너무 코너로 모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특히 임기 말의 레임덕이라고 깔보고 밀어붙이려다가는 큰 낭패를 부를 것이다. 오히려 마음 느긋하게 먹고, 잘한 것도 많다고 추켜 주는 것이 대통령의 막말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심리상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호전적이며 싸움에 능하다는 점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싸움 전문가를 상대로 싸움을 걸면 무슨 이득이 있겠나. 후원자 이기명씨는 집권 초기에 "노무현은 타고난 싸움닭이다. 그 기질을 제외하면 노무현이 아니다. 그 걸로 대통령까지 됐으니까"라고 말했었다. 대통령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지적이다.

대통령이 실력이 늘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최고통치자로서 국정 전반을 나름대로 좍 꿰고 있다. 말솜씨나 논리는 원래 수퍼급이고, IT는 박사급이 됐고, 주요 정책들마다 밤샘도 불사하고 파고 들었으니 "누구든지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라고 큰소리 칠 만도 하다. 자기가 최고라는 확신이야말로 위험한 것인데 바로 그런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러니 장관들이 대통령 앞에선 쫄아서 꼼짝 못한다. 기가 세고 지기 싫어하는 대통령인 데다가 실력까지 붙었으니 섣부른 말대답은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주먹 불끈 쥐고서 공식석상에서까지 울화통을 터뜨리는 상황인데, 어떤 장관이 감히 쓴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선거의 해가 시작되고 레임덕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오기로라도 '노무현식 신독재'를 계속 밀고 나갈 것이다. 가급적 대통령을 화나게 하지 말자.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