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견기업] 우리 회사 원조상품…멋쟁이 신사 동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1950~60년대 신사의 머리는 어떤 모양 이었을까. 당시 말쑥한 양복을 입은 신사들은 대부분 2:8의 비율로 나눈 머리카락에 포마드(정발유)를 발랐다. 그러면 머리에 윤기가 흘렀다. 아모레퍼시픽 (옛 태평양)의 'ABC포마드'는 그때 나왔다. 1951년 첫 출시돼 올해로 시판 55주년을 맞았다. 한국전쟁으로 생활물자가 턱 없이 부족하던 50년대 초반, 화장품의 품질도 조악했다. 마땅한 원료도 없고 제조기술도 변변치 않았다 'ABC포마드'를 내놓기 전 아모레퍼시픽은 '메로디 포마드'란 제품을 만들어 팔았으나 외제에 밀려 이렇다할 판매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바르면 머리카락이 뻣뻣해지고 머리를 감아도 기름기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주인 서성환 회장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식물성 기름을 사용한 고급 정발유 ABC포마드를 만들었다. ABC는 '최고의 화장품' (All Best Cosmetics) 이란 의미로 당시 서 회장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디자인에도 신경을 써 용기에 붙이는 라벨을 일본에서 인쇄해 들여왔다. ABC포마드는 단숨에 국내 포마드 시장을 석권했고 아모레퍼시픽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데 한 몫을 했다. 이 회사 이도열 브랜드매니저는 "기록이 사라져 당시 판매량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50~60년대엔 물건이 없어 못팔았다"고 말했다. 특히 가짜 포마드 사건은 ABC포마드의 성가를 올리는 계기가 됐다. 1961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ABC포마드'를 사서 발랐는데 악취가 나고 기능이 시원치 않자 호통을 쳤다. 당시 아모레퍼시픽 임원이 최고회의에 불려갔다. 임원이 그 제품을 찬찬히 보니 용기만 비슷했다. 바로 경찰이 위조.모조 화장품 단속에 나섰고 ABC포마드의 진품은 날개가 돋힌듯 팔렸다. ABC포마드는 한 때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1995년부터 다시 시장에 나왔다. 옛 고객들이 물건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ABC포마드는 한 해 2000개 정도씩 꾸준히 팔리고 있다. 개당 가격은 1만원선.

염태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