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일본을 축으로 "외교 시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북한의 「남방 외교」가 가속화됨에 따라 앞으로 남북한간의 외교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를 놓고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북한과 일본간의 국교 정상화 교섭을 둘러싸고 벌이는 신경전 이외에는 이렇다 할 경쟁 국면이 남북한간에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북-일간의 국교 정상화 교섭이 어떤 식으로든지 진전되어 가고, 이와 함께 북한이 대미 접근도 활발 하게 벌일 가능성도 있다고 볼 때 남북한간 외교전이 재개될 소지가 있다고 여겨진다. 앞으로 전개될 남북한간의 외교전은 과거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벌였던 「소모전적 성격」과는 다른 차원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남방 외교의 실상 및 배경, 예상되는 한국측의 대응 등을 조망해 본다.
◇북한의 남방 외교=북한은 금년들어 3월 중순 현재까지 16개 대표단을 해외에 파견했고, 10여개의 외국 대표단을 초청했다.
이 같은 방문·초청 외교가 과거와 다른 특징은 그 대상 중에 전통적인 남측의 우방국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북한의 최근 외교 행태를 우리의 북방 외교에견주어 남방 외교라고 부르고 있다.
북한은 중국을 비롯한 이란·리비아·쿠바 등의 국가들과의 오랜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본을 위시한 독일·대만·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호주 등 한국측 기존 우방국들을 상대로 외교 통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 겸 비서인 김용순은 지난 1월15일부터 22일까지 중국을 방문한데이어 2월20일부터 27일까지는 일본을 방문했다.
김은 중국 방문 중 강택민 당 총서기·주량 대외 연락 부장 등과 회동하면서 대일 국교 정상화 교섭에 따른 양국 입장을 조율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에 앞서 1월19일 헬무트 콜 통일 독일 총리 취임식을 맞아 전례 없이 연형묵 총리의 축전을 보내 독일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나타냈다.
북한은 이어 김정우 대외 경제 사업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경제 대표단을 독일에 파견, 독일 공업 연맹 경제 위원회와 「경제 공동 위원회」창설에 합의하기도 했다.
북한은 또 연 총리의 동남아 순방을 통해 태국과는 상주 대사관 개설, 태국산 쌀 수입 (1백만t) 및 시멘트 (40만t) 수출, 인도네시아와는 원유 (1백만t) 수입 등에 합의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2월27일부터 3월3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메흐디 카루비 이란 국회의장과의 회담을 통해 이란산 원유의 도입 (연1백만t) 을 5년간 연장하는데 합의했다.
이 같은 북한의 방문·초청 외교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현상은 북한이 석유와 식량 도입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외에도 국제 고립 탈피를 위해 종전과는 다른 개방 자세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3월초 북한을 방문한 홍콩 기업가들을 수행한 기자들에게 북한 대성 은행의 장건일 부행장은 『북한은 폐쇄된 경제를 개방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체불 외채를 곧 상환할 것』 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88년 중반부터 벌어진 한국의 북방 외교로 소련 등 기존 우방과의 관계가 흔들리는데 따른 파장이 어느 정도 가라 앉았다고 보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본격적인 외교 공세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일본의 북한 문제 전문가인 오코노키 (소차목정부).교수는 『북한은 지금까지 외교에서의 주도적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이는 그들이 대일 수교 교섭을 전격 제안한데서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측 대응 및 전망=아직까지 한국은 북한의 이 같은 외교 공세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다만 북-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양국 회담을 둘러싸고 남북 대화와의 연관성, 북한의 핵사찰 수락 등 5개항을 일본에 주지시켰을 뿐이다.
따라서 북-일 회담이 한국 정부의 요구 사항과 어긋나게 진행되지만 않는다면 일단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배상 차원에서 일본이 대북 협력 자금을 제공해도 무방하고 액수도 많을수록 좋다』고 밝혔다.
게다가 외국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에 들어가게 되면 북한이 개방적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과는 다른 견해가 정부 일각을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있다.
즉 북한이 외교 교섭을 통해 식량·석유 문제에서 숨을 돌리고 나면 대남 강경책을 쓸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 정부의 대응은 5월로 예정된 북-일간 제3차 수교 회담을 전후로 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미·일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서는 관망하고 현안으로 등장한 북-일 수교 교섭에서도 정부가 요구하고 있는 5개항이 수용되는 선에서 북-일 교섭이 이루어지면 무방하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어떻게 대북 입장을 취할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에 변수는 남아있다고 보여진다.
만약 일본이 우리 정부의 의도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가게되면 일본을 둘러싼 남북 외교전은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안희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