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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4)|제85화|나의 친구 김영규(9)-이용상|거사 직전 부대 이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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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입대한지 4일이 지나서였다. 저녁 식사 후 수십명의 초년병들이 수돗가에 모여 와글와글 소리를 내며 식기를 닦았다. 어느새 왔는지 조 일등병이 자기도 식기 닦는 시늉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궐기 계획은 「사단 본부」와 예하 4개 부대를 전부 폭파한 다음 추격해오는 일본군과 응전하면서 평양 북방에 있는 양덕 북대봉에 집결해 낭림 산맥을 타고 검산령을 지나 장률호에 도달, 다시 부전고원→갑산→봉두리를 경유해 만주 국경인 보천보에 진출한다.
보천보는 5년전(1937년5월) 우리 독립군이 일본 경비대를 전멸시켰던 곳이며 평양으로부터 조선 독립군이 있는 제일 가까운 곳이다. 그곳 보천보까지 가는 도중 몇 사람이 살아남을지 모르나 그곳까지만 가면 독립군과 합류할 수 있다.
우리들의 길 안내자와 독립군과는 벌써 연락이 돼있다.
육군 병원에 근무하는 조선인 간호부들은 이미 예정된 코스 요소 요소에 비상용 약품을 숨겨 놓았다.
궐기는 「10월1일 O시」다. 그 날은 음력 추석이기 때문에 밝은 달빛을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조 일등병은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며 『우리는 일본놈들과 전투를 하면서 가는 거다. 그러니 한 사람이라도 더 동지가 아쉽다. 너도 신병들 중에서 쓸만한 동지가 있으면 획득해 봐라. 알겠지』
『넷! 선배님, 추석 날 달 밝은 밤에 멋지게 한번 합시다!』
주위는 여전히 식기를 씻느라 수라장이었다. 나는 벌써 독립군가를 부르면서 눈에 덮인 백두산을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 발자국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10월1일을 5일 앞둔 1944년9월25일 오전 4시 별안간 비상이 걸렸다.
중무장으로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것이다. 여기 저기서 고참병들이 호통치는 고함소리가 진동했다.『미군 낙하산 부대 대동강 모래 사장에 낙하, 현재 비행장을 장악 중. 아군 부대는 이를 포위, 섬멸코자 출동함. 목표 대동강. 부대 앞으로 갓!』
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우리들은 허둥지둥 비행장 부근까지 갔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도, 변화도 볼 수 없었다. 무슨 까닭일까. 부대는 대동교를 지나 곧바로 평양역으로 갔다. 평양역에는 이미 여러 부대에서 온 초년병들로 수라장이었다.
알고 보니 미군 낙하산 부대의 습격이 아니라 부대 이동의 비밀을 은폐하려는 위장술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속은 것이다.
학병 총궐기를 굳게 약속했던 조 일등병의 얼굴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그 날 밤 우리들을 태운 군용 열차는 북으로 북으로 달려 압록강 철교를 지났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 우리 독립군이 있는 만주 땅이나, 아니면 중국 대륙 그 어디엔가 있을 우리 임시 정부 쪽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압록강 철교-.
얼마나 많은 우리 동포들이 망국의 한을 품고 이 철교를 넘어갔던 것인가. 안중근 의사도,김구 선생도, 김광진 장군도, 그리고 윤봉길·이봉창 열사도 모두 비장한 결심으로 이 철교를 건넜던 것이다.
나는 지난해 겨울 방학 때 나를 찾아준 중학 동창 조성윤(당시 만주 건국 대학생)이 들려준 항일 유격대 노래가 떠 올랐다.
「노호 (노호) 처럼 몰아치는 삭풍에 잠 못 이루는 밤이여.
야영 모닥불에 가슴 따스하여도 등을 꿰뚫는 찬바람 에리도다.
건아들이여!
위대한 구국의 웅지
소멸치 말자.
우리들 단결하여 국난에 달려가서
모든 난관 쳐 부시고
빼앗긴 산하, 내 품속에 다시 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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