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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낙태』찬성 " 75%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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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법으로 금지돼 있으면서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낙태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이를 허용해야 하며 여성의 낙태 결정권이 보다 확대돼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행 형법·모자 보건법 등 낙태 규제 관련법의 실효성이 적은 만큼 임신 기간에 따라 차등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거나 낙태할 수 있는 경우를 늘리는 등 낙태 규제를 현실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 (원장 한영석) 주최로 25일 열린 「인공 임신 중절과 낙태죄에 관한 연구」세미나에서 발표된 심영희 한양대교수 (연구실장·사회학)와 신동운 서울대교수 (법학)의 논문에서 밝혀졌다.
다음은 이들의 주제 발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낙태의 실태와 의식 구조(심영희 교수)=지난해 7월 서울에 사는 15세 이상 남녀 1천2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 설문 조사 결과 「임신을 해도 낳지 않을 수 있다」는데 찬성하는 사람이 9백8명 (75·7%)으로 낙태를 허용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있다.
또 「여성 및 아내에게 낙태 결정권이 있다」는데 각각 5백91명 (49·3%) , 6백61명(55.6%)이 찬성하고 있어 여성의 사회 참여 증대에 따라 낙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의식이 어느 정도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태아는 생명체이므로 절대 낙태해서는 안된다」는 생명 우선론과 「여성의 인생설계에 따라 낙태할수 있다」는 선택 우선론 중 어느 한 가지를 택한 응답자는 4백30명 (35·8%) 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형법 제269, 270조에 의해 낙태가 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5백78명(48·2%), 모자 보건법상 낙태 관련 조항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 3백28명 (27·3%) 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낙태 문제에 대한 일반인의 무지와 무관심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낙태죄(신동운 교수)=낙태죄는 60년대 이후 범국민적 가족 계획 등의 영향으로 거의 사문화한 감이 크지만 현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태아에까지 미친다고 볼 때 형법에서 낙태죄를 삭제할 수는 없다. 또 낙태가 아무리 죄의식 없이 만연하고 있다 해도 이에 대한 처벌이 무가치하거나 사회 정의에 위반될 정도에 이를 만큼 위법성이 크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낙태죄 폐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 졌다고 보기 어렴다.
오히려 임신 중절로 인한 남녀 성비 불균형, 인구 증가 추세 둔화 및 마이너스 성장 예상, 노동력·병역 인력 감소 등으로 기존의 인구 억제 정책에 기초한 낙태 합법화 논의가 빛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낙태죄는 존치시키되 사회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모자 보건법 개정을 통해 임신기간별·임신 사유별로 낙태의 허용 범위를 신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 이 법 시행령에서 허용하는 임신 28주내의 임신 중절은 인큐베이터에서 생존할 정도의 영아를 살해하는 셈이 되는 만큼 허용 기간을 일본의 경우처렴 23주 정도로 축소하고 임신 사유의 긴급성에 따라 중절 허용 기간을 달리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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