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이라크대책 “엉거주춤”(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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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후세인 체제 싫고 반군도 못마땅/방치할땐 「제2의 레바논」 우려도/군부 후계자에 한가닥 기대
미국이 종전후의 이라크대책을 놓고 표류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제거된 전후구도를 상정하고 있는 미국은 이 목표가 의도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반군 진압을 위한 이라크 공군기의 비행을 금지시키고 있으며 이를 어겼다해 이라크 공군기를 격추했다.
이라크는 남쪽은 급진회교세력인 시아파에 의해,동북쪽은 쿠르드족에 의해 점령됨으로써 이라크는 인구의 75%가 반군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반군세력에 의해 이라크가 주도될 경우 인접한 이란과 결합,이 지역의 새 불씨가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이 반군도 시원하게 지원을 못하는데 고민이 있다.
일부에서는 이라크의 현 사태를 방치할 경우 이라크가 내전사태가 지속되는 제2의 레바논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미국이 종교와 인종문제로 얽혀있는 이라크라는 판도라상자 뚜껑을 열어놓고는 수습을 못하고 있다고 비유하고 있다.
이라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란은 회교혁명최고회의 이름으로 수개연대를 무장시켜 이라크의 시아파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조기철군을 국민에게 약속한 마당이라 사태가 여의치 않다고해 주둔을 장기화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지난번 카리브해의 마티니크섬에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을 만났던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했다.
미국은 현 이라크 국경을 지금대로 유지한다는 약속을 한데다 지금의 반군에게는 이라크를 내줄 수 없고 그렇다고 후세인체제를 유지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반군의 기를 꺾자니 이라크군의 진압을 묵인해야 하고,그러자니 후세인이 이를 기화로 계속 집권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제3의 대안으로 이라크 현 군부에서 후세인의 계승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암시를 한 바 있다.
종교적·인종적으로 얽혀있는 이 나라에서 그나마 민족주의로 무장된 세력은 군부 뿐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라크 군부가 이 역할을 맡아 주느냐 여부인데 현재와 같이 혼란하고 유동적인 상황에서 그 가능성이 아직 보이지 않고 있는데 미국의 어려움이 있다.
미국은 적어도 금년말까지는 후세인이 제기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유동적인 상황을 빨리 종식시켜야 이라크 군부가 후세인의 제거를 생각해볼 여유를 갖게될 것이라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이들은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종전 협상을 마무리지어 이라크 군대가 제공권을 갖고 반군을 진압케 하는 길밖에 없다는 건의도 하고 있다.
사우디등 아랍관련국들은 미국이 서둘러 종전협상을 한 뒤 이라크 점령지로부터 조기에 철수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어 일이 더욱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다. 이들은 이란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이 두렵고 이라크 내부문제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에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다른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러한 판단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국민의 75%가 반군에 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자의적으로 사태를 끌고 가려다가는 오히려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또 지난주 반군세력들이 베이루트에 모였을때 미국이 이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앞으로 두고 두고 후회거리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등 걸프국가들의 요청이라는 이유 때문에 25%밖에 안되는 수니파의 계승을 고집하는 것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판도 때문에 미국이 전쟁에서는 이겼으나 결국 최후의 승리자는 이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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