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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성금 어떻게 쓰였나|높이 65m 쌓은 뒤 "낮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82년 12월부터 3개월 가까이 모금됐던 6백61억 원의「평화의 댐」건설 성금은 어디에 어떻게 쓰였을까. 고사리 손에서부터 재벌 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국민이 참여했던 성금 중 쓰고 남은 돈은 누가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까. 5공을 1년여 남겨 놓은 86년 말부터 87년 초의 기간중 온 나라를 휩쓸다시피 했던 북한의 수공위협은 시금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가. 말많던 5공 사업 중 하나인 평화의 댐은 이제 국민 대다수의 뇌리에서 벗어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할 정도로 역사 속에 묻혀 있다. 지상 높이 65m의 평화의 댐 역시 관리 막사는 물론 관리인 한 명 없는 가운데 눈 덮인 민통선 안 강원도 화천군 ??동면 구만리에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지난 88년 5월27일 최동섭 당시 건설부장관 등 관계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려한 완공 테이프 커팅과 이후 한때 안보관광지로「각광」받았던 평화의 댐의 화려했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신문·방송 등 온갖 매체가 동원돼 전국민을 모금의 장으로 끌어냈던「평화의 댐 건설 지원 범국민 추진 위원회」는 공사가 끝난 뒤 1개월 여 만인 88년 6월30일 해체됐고 사후관리는 건설부로 넘겨졌다.

<관계자들 발뺌만>
그나마 정부 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평화의 댐 관련기구로는 총리실에「평화의 댐 건설 총 사업 추진위원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위원회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쓰고 남은 성금의 관리를 범국민 추진위로부터 인수한 건설부는 최근 관리업무를 이 위원회에 떠넘기려다 실패했다.
「쓰지도 못할」돈이니 굳이 받으려 하지 안는 셈이다.
건설부에서 평화의 댐 얘기를 꺼내면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당시 이 댐과 관련돼 일을 추진했던 사람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도 그럴 것이 외부적으로는 건설부가 이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하수인, 적어도 대리인 역할밖에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댐 관리와 성금관리를 맡고 있는 당사자들은 그때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며 발뺌부터 한다.
평화의 댐 건설문제는 처음부터 안기부 사업이었다.
정권유지 차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안기부가 최소한 대북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롯되었고 그렇게 진행됐던 것이다.
평화의 댐 건설사업은 정부 논리대로라면 완공사업이 결코 아니다. 다만 l단계 사업만 끝냈고 2단계로 높이 2백m까지의 사업이 잠재적으로 남아 있는 상태라는 주장이다.
이 논리의 근거는 이렇다. 북한의 공식발표대로라도 북한이 동해안 지역의 전력 난 해소 책으로 막고 있는 금강산댐은 비록 공정 이 지지부진하긴 하지만 건설이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 댐은 높이가 l백21m나 돼 북한 주상대로라도 완공 후 저수량이 26억t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측 전문가들이 지형 등을 고려해 추정한 바에 따르면 저수용량이 최소 80억t, 많게는 2백억t에 달하리라는 것이다.

<북한 댐 진척 부진>
설사 수공차원의 의도석인 댐 폭파가 아니고 사고에 의해 금강산댐이 무너질 경우 그 많은 물이 임시에 방류되면 서울을 포함한 북한강 수계 권은 모두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수몰지구가 되므로 저쪽 댐 축소 상황에 맞춰 언젠가는 2단계 공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그날까지 국민들이 낸 성금은 용도를 바꿀 수도, 내줄 수도 없는 형편인 셈이다.
건설부가 상업은행과 부산·경기·강원·전북 등 4개 지방은행에 장기 예치해 두고 있는 성금 잔액은 2월말 현재 l백4억 원.
당초 성금 6백61억 원과 은행이자 82억 원 등 모두 7백43억 원에서 가배수로·진입로·본댐 축조 공사비로 지출된 6백39억 원을 뺀 액수다.
잔액은 날이 갈수록 이자에 이자가 붙어 그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최초 조 성원이 예산이 아니고 국민성금이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전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북한의 금강산댐 공사는 당초 5공의 주장과는 달리 진척도가 매우 더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댐 축조를 위한 가배수로 공사는 마무리돼 있지만 암반 조성조차 안돼 있다는 것이다.
암반구축이 끝나면 개략적인 댐의 규모가 밝혀지고 그때 가서 우리측의 2단계 공사 규모도 정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해외건설의 부진으로 놀고 있던 66대의 대형장비 특별도입의 계기도 됐던 평화의 댐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인 채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다. <이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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