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3100여 명 정규직 전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은행은 비정규직 행원 3100여 명 전원을 내년 3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20일 밝혔다. 이 은행의 비정규직 행원은 정규직 직원 1만1000여 명의 28%에 달한다. 대신 정규직 행원의 내년 임금은 동결하기로 했다. 비정규직 사원이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처음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3100여 명의 급여는 단계적으로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지고 고용 보장은 물론 자녀학자금과 유급휴가 등 복리후생 혜택도 정규직과 같게 된다. 우리은행은 또 내년부터 비정규직은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이날 "정규 직원의 임금동결을 전제로 이뤄진 이번 합의를 통해 비정규직 직원이 고용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 우리은행의 생산성과 영업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호웅 노조위원장은 "임금인상을 희생해야 할 정규직 행원에겐 미안하지만 비정규직 행원의 설움을 해결하자는 차원에서 결단한 만큼 이해해줄 것"이라며 "이번 일이 금융권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이번 조치와 관련, 재경부는 물론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사전 협의 없이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 비슷한 업무 정규직과 같은 대우=우리은행 직원들은 7개 직군으로 나뉜다. 이 중 기업금융.개인영업 등 4개 직군은 정규직이, 창구업무와 콜센터 등 3개 직군은 비정규직이 맡고 있다. 앞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바뀌더라도 직군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 직급별 호봉제가 적용되는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에 적용되는 연봉제도 유지된다. 다만 이들의 임금총액은 개인영업 등 비슷한 업무의 정규직 수준으로 순차적으로 오르게 된다. 이들의 임금은 현재 정규직의 65~80% 수준이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앞으로 "우리은행이 직군제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임금을 차별하고 있다"는 삐딱한 시각이 사라지길 기대하고 있다.

◆ 은행권 반응=다른 은행들은 당혹해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막대한 비용 때문에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수 은행은 이미 시험을 통해 비정규직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고 있다. 국민은행(80명), 하나은행(93명)을 비롯해 각 은행은 올해 100명 안팎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신한은행은 내년 초 100여 명을 전환할 예정이다.

은행들은 우리은행처럼 비정규직 행원을 조건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면밀하게 검토 중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을 2년간 고용한 뒤엔 정규직화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 문제를 마냥 미뤄둘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상렬.최익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