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침체 뚫고 수출로 경제 이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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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국내 굴지의 한 경제연구소는 "2006년을 한국 경제 르네상스(부흥)의 원년으로 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지부진하던 경기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회복의 기미를 보이자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던 것이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전망은 나쁘지 않았다.

2005년 하반기 들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던 가계 버블 후유증이 크게 완화되고, 수출도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자 2006년은 수출과 내수가 균형 있게 성장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고유가와 원고(高) 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 핵 실험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경기 흐름은 애초 기대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환율·유가 부담에 북핵까지

수치상으로만 보면 올해 경제는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4%)보다 높은 5% 성장을 이뤄냈고, 수출도 4년 연속 두 자리 성장을 하며 3000억 달러를 넘겼다. 한국 경제 나름의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 상승의 탄력이 떨어지면서 성장세가 둔화된 점. 수출이 호조를 보였음에도 소비와 투자가 기대만큼 받쳐주지 않아 체감 경기는 한 해 내내 썰렁하기만 했다. 1분기 6.1%까지 올라갔던 성장률은 '뒷심'을 잃어버리면서 하반기 들어 4% 초반으로 떨어져버렸다.

이 같은 성장률 둔화는 민간 소비 등 내수 부문이 받쳐주지 않은 탓이었다. 일자리가 잘 늘어나지 않고 실질임금 상승률도 둔화하면서 개인들의 주머니가 열리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하반기까지 이어진 고유가도 소비심리를 불안하게 했다.

원고와 고유가는 올해 내내 기업을 괴롭혔다. 연초 1000원대를 오르내리던 원-달러 환율은 5월 930원선이 무너졌다. 3분기 이후 950원 중반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은 연말이 되면서 920원대로 주저앉았다. 원-엔 환율마저 100엔당 800원선 밑으로 내려오면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우리 업계에 적색 경보를 켰다.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도 8월 8일 배럴당 72.2 달러까지 치솟는 등 고공행진을 계속해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을 줬다. 다행히 9월 이후 50달러선에서 안정을 찾았지만, 언제 폭등할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여기에 10월 터진 북한 핵실험 사태는 내년도 경영 계획을 짜던 기업들에 큰 충격과 혼란을 줬다.

#희비가 교차한 산업전선

희망과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가운데 올 산업계는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나빠진 여건 속에서도 IT.자동차.조선 등은 수출 전선에서 제 몫을 해냈다. 특히 반도체는 지난해에 비해 큰 폭의 생산과 수출 증가를 이뤄냈다. 삼성전자는 40나노 32기가 낸드 플래시메모리를 개발하는 등 앞선 기술력과 과감하고 꾸준한 설비투자로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주도했다. 또 하나 수출 효자 산업인 조선은 사상 최대의 일감이 밀리면서 주문을 가려받을 정도가 됐다. 상반기 전 세계 수주 물량의 41%를 휩쓸며 경쟁국 일본을 저만치 따돌렸다. 자동차는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판매에서 고전했지만, 품질 면에선 이미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6월 실시된 미 JD파워의 초기품질조사(IQS)에서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전체 3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반면 반도체와 함께 IT 한국을 대표하던 휴대전화는 노키아.모토로라의 저가 공세에 환율 하락까지 겹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계시장 점유율 상승세가 꺾이고, 국내 3위 업체 팬택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석유화학도 설비증가에 따른 제품가 하락과 내수 부진 등에 시달리며 썰렁한 겨울을 맞아야 했다. 유통업은 가계 버블의 조정이 완료되면서 지난해에 비해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특히 대형마트 매출액은 전년 대비 10% 가까운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어 내년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유통업계엔 이랜드그룹의 한국까르푸 인수, 신세계의 월마트코리아 인수, 애경의 분당 삼성플라자 인수 등 한 해 내내 인수합병(M&A)이 화제로 떠올랐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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