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기술낙후의 위기(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한일간 산업구조비교분석 결과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점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분석결과에 따르면 제조업에 투입되는 부품등 중간재의 수입의존도가 일본은 7.2%에 그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그 3배에 달하는 22%나 된다.
특히 자동차·전차·기계류 등 주력수출업종의 경우 그 격차가 더욱 벌어져 일본의 중간재 수입의존도가 2.5%인데 비해 우리는 21.9%로 일본에 비해 9배나 높다. 더욱이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일본의 중간재 수입의존도가 80년의 9.3%에서 85년에는 7.2%로 감소추세를 보인반면 우리는 같은 기간 20.6%에서 21.7%로 오히려 증가추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일본에 비해 우리 제조업이 필요로 한는 중간재의 수입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우리의 산업시설이 절반이상 수입자본재에 의존하고 있는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일본제품이라는 점이다. 수입중간재도 거의 대부분이 일본제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88,89년까지만 해도 39달러 수준에 머물렀던 우리의 대일 무역 적자가 지난해에는 59억달러로 급격히 늘었고 그중 상당한 몫이 공장 자동화에 따른 산업시설재의 수입증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 산업의 대일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가 시사하는 것은 우리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는데도 불구하고 대일 의존도가 줄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불길한 사실이다. 이런 구조아래서는 수출이 늘면 늘수록 일본에 좋은 일만 시키게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경제는 발목을 단단히 잡혔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가 호전되기는 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 경제가 이처럼 참담한 사태를 맞게된 요인을 따져 보면 결국 기술의 낙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30년간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좋든 싫든 일본에 등을 기대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일본기술이 우리보다 앞서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경제가 성장궤도에 올라서면 한일간에 가로놓인 기술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고 궁극에는 일본을 따라잡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현실은 오히려 그 간격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들 뿐이다.
걸프전쟁이 끝난 후 국내 일부에서는 경기의 호전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전쟁중 졸라맸던 허리띠가 어느틈엔가 느슨하게 풀리고 있는 듯도 하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다. 우리의 기술력이 선진국수준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후퇴를 지속하는한 아무리 외부여건이 좋아지고 국내경기가 호전기미를 보인다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국민적 에너지를 기술개발에 모을 때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