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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근로자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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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경기가 나빠져서 고용 사정이 빡빡해질 때 실직자들은 대개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하던 분야에서 일자리를 계속 찾아보면서 실업자로 남는 경우다. 둘째는 다른 분야의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셋째는 아예 일자리 찾기를 단념한다.

처음 두 가지 경우는 고용통계에서 실업자로 잡힌다. 실업자는 구직(求職) 의사가 있는데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셋째 경우는 실업 통계에서 빠진다.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취업시장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실직자이긴 하지만 실업자는 아니다.

일을 할 능력이 있는데도 취업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일을 안 하기로 선택하는 경우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일하느니 차라리 노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개 물려받은 재산이 있거나, 다른 가족의 소득에 얹혀 산다. 일할 의욕이 별로 없으면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전형적인 백수(白手)다. 그다지 권할 만한 행태는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문제될 건 없다.

정말 심각한 경우는 진정 일을 하고 싶지만 당분간 구직 가능성이 안 보이거나, 일자리 찾기에 지쳐 포기한 사람들이다. 1958년 프린스턴 대학의 클레런스 롱 교수는 불황이 심해졌는데 오히려 실업자가 줄어드는 현상에 주목했다. 연구 결과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구직을 포기한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임이 드러났다. 구직 가능성을 낮게 보는 사회초년병들이 처음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는 것도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롱은 이를 '실망 근로자 효과(discouraged worker effect)'라고 명명했다. 취업에 실망한 구직 포기자들이 늘어나면서 불황에도 실업률은 낮아지는 통계적 착시를 불러오는 현상이다. 실망 근로자가 많아지면 당사자와 가족의 경제적 고통과 좌절감도 크지만, 일할 능력이 있는 인력이 사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다.

올 들어 11월까지 15세 이상 일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 취업 의사가 없는 비경제활동인구가 월평균 1475만 명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주부나 학생 등을 빼고 그냥 쉬고 있다는 사람이 2003년 89만 명에서 올해 126만 명으로 37만 명이 늘었고, 취업준비생이 35만 명에서 53만 명으로 18만 명이 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자발적 백수라기보다는 실망 근로자들일 공산이 크다. 취업을 포기한 이들의 실망이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