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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모양(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봄철이 되면서 해묵은 병이 슬슬 도지는 것 같다.
「말의 정치」는 접어두고 「삿대질의 정치」가 막을 올릴 모양이다. 지방자치제 선거시기와 방법을 놓고 여야는 각자 제 갈길을 가기로 했다. 이대로 가면 30여년만에 다시 찾은 「풀뿌리 민주주의」는 축제는 고사하고 최루탄 세례나 받지 말았으면 좋겠다.
문제는 두가지다. 하나는 그 시기다. 그동안 선거는 여야가 의논껏 할듯 하더니 느닷없이 20일 후에 「기초의회」부터 선거를 치른다는 것이다. 유권자 입장에선 가뜩이나 낯선 선거인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래가지고는 축제의 축자 소리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여야 극한대결의 정치구도다. 때는 이때다 하고 장기자랑하듯 장외정치를 벼르고 나선 야당이나,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의 여당이나 정치력이 빵점이기는 꼭 마찬가지다.
이번 걸프전쟁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은 종래의 대통령과는 다른 몇가지 정치 스타일을 보여 주었다. 하나는 무려 넉달을 두고 지치지 않는 외교력을 발휘해 걸프전쟁의 모양을 세계의 양식있는 그룹과 비양식 그룹의 전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미국 의회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전화로,백악관 조찬 초대로,언론 플레이로,그야말로 전천후,올 코프 프레싱 전법을 구사해 반대할만한 세력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쯤되자 부시는 자신있게 그의 주변에 그의 결정을 밀고 나갈 의지와 행동력이 있는 사람들만 모아놓고 전쟁의 버튼을 눌렀다. 정치는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예술작품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작품은 고사하고 민주정치의 가장 원초적인 기술인 협상 하나 제대로 못해 한쪽에선 장외정치다,가투다 하고,다른 한쪽에선 속수무책,일껏 궁리한다는 것이 밀고 나가는 것이라면 그 정치판은 보나마나다. 말이 좋아 30년만의 축제지 그 선거를 즐거워할 유권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분위기면 선거는 초장부터 난장판이 되지말라는 법도 없다.
이젠 국민들도 눈치가 빤해 당리당략에 들러리나 서고,정치의 도구가 되어주는 신세엔 흥미가 없다. 지금도 늦지는 않다. 여야는 협상의 과정을 밟아야 조용하고 즐거운 축제선거의 모양을 갖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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