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학] 엉클어진 삶도 유쾌·통쾌·상쾌하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꼽히는 아쿠타가와상(芥川賞)과 나오키상(直木賞)은 각각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작품에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두 상 사이의 간극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세종대 일문과 박유하 교수는 "나오키상 수상작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에 비해 좀 더 엔터테인먼트적이기는 하지만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3세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는 고국의 독자들에게 좀 섭섭했을 법하다. 그는 첫 장편소설 '고(GO)'로 2000년에 나오키상을 받았지만, 유미리.현월 등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재일동포 작가들에게 쏠린 관심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거의 푸대접을 받았다. 조총련에서 민단으로 전향한 아버지를 둔 재일동포 3세 고등학생이 일본인 소녀와의 연애를 통해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을 경쾌하게 그린 '자전적 성장소설' '고(GO)'는 한.일 합작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극소수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중편집 '레벌루션 No.3'에 대한 반응도 시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가네시로가 "이래도…"라며 작심하고 쓴 듯한 소설이다. 명랑하고 유머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던 '고(GO)'에서 무게를 더 덜어내고, 짜릿하고 유쾌한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 덕분에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진행을 빠르게 훑고 나면 건져지는 것은 별로 없다. 하지만 확실한 흡인력이야말로 영상매체가 호령하는 시대에 소설이 갖춰야 할 주요한 덕목인지도 모른다.

주인공 스즈키는 도쿄에서 태어나 '일류'에 한 계단 처지는 대학에 진학해 현재의 부인을 만났고, 눈곱만한 변화도 없는 삶이 지루하면서도 안심되는 마흔일곱의 샐러리맨이다. 그의 유일한 낙은 빼어난 미모에 똑똑하기까지 한 열일곱살 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다.

파탄은 역시 딸로부터 시작한다. 어느 날 딸은 이시하라라는 남자 고등학생에게 오른쪽 눈두덩이 부어 눈이 감길 정도로 얻어맞는다. 하교길에 이시하라를 따라 노래방에 갔다가 다툰 끝에 얻어맞았다는 사고 경위도 평소 얌전한 딸의 행실에 비춰 믿지 못할 것이지만,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딸이 입원한 병원에서 만난 이시하라와 이시하라의 지도교사, 교감 등 세 명에게서 어떤 미안한 기색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분위기는 합의를 강요당하는 험악한 것으로 흐르고 심지어 이시하라는 능숙한 권투 자세로 스즈키를 겁주기도 한다. 이시하라는 전국대회에서 복싱 라이트급 삼연패를 노리는 '선수'였던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이 눈앞에서 무참히 유린됐는데도 손 하나 쓰지 못한 절망적인 경험은 스즈키를 둘러싼 세계를 파탄낸다. 일상의 톱니바퀴는 엉망으로 뒤틀리고 부녀의 관계는 심각하게 금이 간다.

1m68㎝, 65㎏, 체지방률 23%, 87-76-90(㎝) 사이즈의 스즈키는 고민 끝에 이시하라와의 결투를 결심한다.

이후 소설은 스즈키의 혹독한 수련과정을 실감나게 전한다. 결투일 직전 스즈키의 체형은 63㎏, 체지방률 12%, 90-69-89 사이즈로 변해 있다. 결투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어쨌든 결투 과정은 아드레날린을 부른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