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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연륜 배어나는 훈훈한 일상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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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소설가 이청준(64.사진)씨가 2002년 6월호부터 지난 8월호까지 월간지 '현대문학'에 '돌, 나무, 강물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산문들을 묶었다.

오규원.김병익.김원일.고(故) 김현 등 절친하게 지냈거나 지내고 있는 문인들과 얽힌 여행 추억, '제법 곁에 두고 볼 만한 수석급(壽石級) 품목'까지 포함된 '돌멩이 컬렉션'을 시작하게 된 경위 등 이씨 삶의 세목을 이루는 일상사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눈에 힘 주고 긴장하거나 할 필요 없는 이씨의 잔잔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슴은 훈훈해지고 눈은 따뜻해진다. 이씨 산문의 그런 따뜻함은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사태의 맥을 적절하게 짚어내는 말의 구사, 연륜과 성숙이 배어나오는 둥글둥글한 문체 덕에 정도를 더하는 것 같다.

경우와 도리를 따져 진퇴를 결정하고 무례에 진저리치는 것으로 보이는 이씨의 성정(性情) 한편에 숨어 있었을 낭만적인 면과 수석을 향한 욕심 등을 엿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돌 이야기 5'에서 진도 근해의 해상 명물 남근암(男根岩)의 도저한 위세 때문에 엉뚱한 충동이 들어 시 흉내를 내 보았다는 핑계를 대고 자작시 '관매도 뱃길'을 소개한 이씨는 내친 김에 자신은 '섬에만 가면 자꾸 주책이 없어진다'며 2000년 제주도에 갔을 때 지은 시 '범섬의 아침'을 소개한다.

오랜 기간 수석에 관심을 기울이며 터득한, 원하는 돌을 손에 넣는 노하우는 유쾌하다. '마음에 드는 돌 아무거나 하나 가져가라'고 나오는 천사 같은 수집가를 만나는 행운은 이씨의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니 노하우로서는 조금 부적격이다. 이씨는 돌의 주인을 괴롭혀 '안 주면 내놓게 하는' 방법, 가장 바람직스럽지 못한 방법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기도 한 '주인 허락 없이 주워오기' 등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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