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국과 양자회담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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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18일 오전 중국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미국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관련 계좌에 대한 조사를 문제 삼아 회담을 중단시킨 지 13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미국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17일 중국에 입국해 "북한에 필요한 것은 비핵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모든 것은 북한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16일 베이징에 도착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억지력을 필요로 하는 한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며 "9.19 공동성명의 이행은 우리에게 가해진 제재 해제가 선결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미국은 17일 북한과의 양자협상을 추진했으나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 힐 차관보는 지난달 29일 김 부상과의 북.미회담에서 핵 포기의 대가로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안전보장 방안을 제시했고, 김 부상은 "(북한에)돌아가 검토한 뒤 결과를 통보해 주겠다"고 답변했었다. 북한이 북.미 양자회담을 거부함에 따라 6자회담의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천영우 한국 6자회담 수석대표는 "이번 회담은 탐색전의 성격이 있는 만큼 큰 성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6자회담 본회담과 BDA 문제를 논의하는 북.미 실무회담이라는 두 갈래의 협상으로 진행된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BDA 문제를 트집 잡아 6자회담의 진행을 방해할 것에 대비해 한국과 미국이 만든 조치"라며 "BDA 문제를 6자회담에서 분리해낸 것 자체가 이번 회담의 성과"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이상언 기자

회담 진행 어떻게
6자회담선 북한 핵 폐기만 다뤄
BDA계좌 문제는 북.미 별도 논의

18일 재개되는 6자회담의 핵심 의제는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동결 해제'와 '북한의 핵 폐기 초기조치 이행'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됐다.

미국은 6자회담 재개와 동시에 북한과의 양자 실무협상을 통해 BDA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 "법 집행의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과 별도의 협상은 할 수 없다"던 미국의 태도가 누그러진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제 BDA 문제는 6자회담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과 북한이 해결해야 할 사안이 됐다"고 밝혔다.

이 협상을 위해 미국은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테러자금지원 및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를 중국에 보냈다. 북한은 이근 외무성 미주국장을 그의 협상 상대로 내세웠다. 미국은 실무협상에서 BDA 계좌 조사의 절차와 진행 상황을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되도록 빨리 조사를 마쳐 중국 당국이 계좌 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북측에 밝힐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곧 BDA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중국이 북한 계좌의 자금 중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부분은 북한에 내주는 수순을 택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말했다.

BDA 문제가 북.미 실무협상으로 넘어갔지만 6자회담의 발목을 붙잡을 가능성은 여전하다. 북한 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중국에 도착해 "11월 조(북).미 접촉에서 미국에 우리 요구를 이야기했고, 미국은 알고 갔다"고 말했다. BDA 북한 계좌 동결을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는 북한의 입장을 전달했다는 의미다.

6자회담의 관건은 북한의 핵 폐기 초기조치 수용 여부다.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은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 수용 등의 비핵화 초기조치를 북한에 요구할 계획이다. 북한이 초기조치 이행과 에너지 지원, 한국과 일본의 인도적 지원 재개, 북.미 관계 정상화 논의 시작을 맞바꿀 의사를 보인다면 회담은 급진전될 수도 있다. 정부 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핵 폐기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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