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선·후배 패티 김과 비 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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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2개국 공연에 나서는 가수 비(24.정지훈)의 월드투어 첫 무대가 펼쳐진 15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월드투어의 하이라이트 격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공연(23, 24일)을 앞두고 비는 이날 환상적인 무대 위에서 역동적인 춤과 노래를 선보이며 자신의 진가를 맘껏 발휘했다.

1만여 관객의 환호와 무대 열기가 공연장을 한껏 달궈놓은 가운데 관객석에서 비의 무대를 감회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원로가수 패티 김(68)이다. 1963년 국내 가수로는 처음 미국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진출했던 그다. 4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까마득한 후배가 '꿈의 무대'에 다시 선다는 소식에 그는 바쁜 연말 공연 일정과 감기몸살에도 이날 공연장을 찾았다.

당초 "비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조용히 공연만 보고 가겠다던 그를 비의 소속사인 JYP의 홍승성 대표가 공연 직전 가수 대기실로 이끌었다. 그는 "후배의 공연에서 뭔가 하나는 배워가겠다는 마음으로 왔다"며 격려했고, 비는 "대선배님께서 찾아와 주셔서 영광"이라고 답했다.

43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것일까. 공연을 지켜보던 그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당시 나는 쓸 만한 동양인 가수를 물색하던 미국 매니저의 손에 이끌려 라스베이거스를 찾았어요. 큰 무대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지금은 기획사의 체계적인 시스템에 의해 해외 진출이 성사되지만, 그때는 변변한 매니저 한 명 없던 시대였죠. 우리 세대의 가수들이 험한 길을 혼자 외롭게 걸었다면, 요즘 후배들은 아스팔트 길을 자가용으로 내달리는 셈이죠."

20대 중반에 큰 꿈을 품고 미국 땅을 밟았지만, 그곳에 동양의 무명 여가수가 설 무대는 딱히 없었다. 뮤지컬 조연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인종차별로 서러운 일도 많이 당했지만, 묵묵히 실력을 쌓아갔다.

"한 번은 백인 전용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한 백인 여자가 '네가 왜 여기 있느냐'고 따지더군요. 얼마나 서럽던지 눈물이 펑펑 나더군요. 당시 동양인은 어딜 가도 '멍키(원숭이)'라고 놀림을 당했어요. 지금 후배들은 한류 덕분에 어딜 가도 스타 대접을 받지만, 당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뮤지컬 조연을 하던 그에게 호텔 라운지 무대(본 무대가 아닌 보조 무대)의 기회가 주어졌다. 24시간 쇼를 하는 라운지 무대는 한물 간 스타나 신인들이 주로 서는 곳. 이곳에서 그는 미국 가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가창력을 과시하며 '노래 잘하는 한국 미녀'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회는 찾아왔다. 새로 생긴 '탈리호(Tallyho)'라는 호텔의 메인쇼룸에 입성하게 된 것. 그곳에서 '서머타임''스타더스트' 등의 노래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지만, 가장 감동적인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서투른 영어로 아리랑을 설명한 뒤 구슬픈 창처럼 아리랑을 불렀는데, 저절로 눈물이 흐르더군요. 관객들이 나중에 '그 좋은 노래를 부르며 왜 우느냐'고 위로를 해줬지요."

낡은 중고차를 몰고 먼 곳까지 찾아와 격려와 함께 김치를 전해주던 유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지금처럼 한류 열풍도 없었고, 가수의 해외 진출에 대한 국가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던 그때 자신과 같은 선배 가수들의 도전이 있었기에, 비와 보아 같은 월드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파워풀한 춤과 남성적인 목소리, 애교 있는 무대 매너에 감동했다"는 패티 김은 "미국 진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퀸시 존스 같은 세계적인 프로듀서를 영입해서라도 수준 높은 앨범을 만들어 노래로서 미국인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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