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금」 유선희|난청·가난이긴 "인간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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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국의 동계유니버시아드 참가 사상 최고의 히로인이 삿포로에서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태어나면서부터 숙명처럼 안고 살아온 가난과 병마 (난청)의 굴레에서 한시도 벗어나 보지 못한 강원도 두메산골의 25세난 처녀가 삿포로 마코마나이 링크의 차디찬 얼음판 위에서 장미보다 고운 한송이 꽃을 찬란히 피워내고 있다.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유선희 (동양화학). 빙상인들은 유를 대할 때마다 얼굴 마주치기를 꺼린다. 6년째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을 이끌어 온 한국 빙상의 견인차이건만 별로 나아진 주위 환경이 없다.
강원도 양구에서 소작을 부치던 71세의 아버지 (유영윤)는 10년째 병으로 방에 누워있고 57세의 어머니 신영숙씨가 식당 허드렛일로 어렵게 가계를 꾸려간다.
유가 스케이트를 탄 것은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어려서부터 힘이 좋고 운동 감각이 뛰어나 겨울이면 자연스럽게 동네 얼음판에서 사내 아이들과 어울렸고 그러다 도내 국민학교 대항전에 출전해 우승한 것이 끝내 이 길로 접어들게 했다.
그러나 국민학교 5학년 때 중이염을 앓은 탓에 오른쪽 귀가 거의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데다 가족들의 거센 반대로 갈등을 겪었지만 유봉여중에 들어가 권복희 교사의 자상한 지도로 마음을 다잡게 됐다.
이어 빙상명문 유봉여고에 진학, 고교 무대를 석권하기 시작한 유선희는 86년 대표팀에 발탁돼 박창섭 (48) 감독을 만나면서부터 운동과 인생에 눈을 뜨게된다.
찌든 가난과 청각 장애의 울어버리고 싶은 「가엾은」 인생이 풍진 세상을 버틸 수 있는 길은 이미 시작한 빙상에서 끝을 볼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인식을 하게된 것이다.
이어 태릉선수촌에 입촌해서는 박 감독의 남자보다도 혹독한 체력 훈련을 앞장서 참아냈다.
훈련 중에는 말소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격앙된 감독으로부터 매아닌 매도 많이 맞았고 남몰래 흘린 눈물도 수없이 많았다.
지금도 스타트 때에는 총성을 잘 듣지 못해 플라잉 (반칙 출발)을 범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으며 반복된 감각 훈련과 실전 경험으로 어렵게나마 보완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5백m의 경우 스타트 후에는 무조건 호진의 힘으로 내닫기만 하면 되지만 1천m는 중간에 감독으로부터 작전 지시를 받게 되는데 유는 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스타트, 또는 표지판으로 래프타임·레이스 조절 등을 전해듣는다.
『내가 소리지르는 것만 하겠습니까』 박 감독의 아쉬움 섞인 토로지만 어쩔 수 없는 일.
1천m 레이스에서 7백m까지의 기록이 세계 최고이면서도 항상 정상의 일보 직전에 눈물을 삼켜야 하는 것은 청각장애로 상황 판단이 안돼 레이스 운영을 정상적으로 못하기 때문이라는 데에서는 아쉬움을 뛰어넘는 아픔이 따른다.
유선희는 5일 강력한 라이벌인 북한의 송화선과 1천m에서 재격돌케 되는데 두번째 금메달을 꼭 따겠다며 이를 악다문다.
5백m 우승으로 연금이 17점까지 올랐으나 아직 20점이 안돼 연금 수혜도 안 다.
3위권 진입이 보장된 월드컵 시리즈를 마다하고 굳이 유니버시아드를 택한 것은 어떻게 해서는 연금 점수를 높여야겠다는, 그래서 고향에서 고생하는 부모님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한다는 갸륵한 마음에서다.
『다른 어느 직업에서도 이 정도 땀을 흘리면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을 텐데…. 25세난 처녀가 화장하고 멋 부리기 싫어서 6년간이나 태릉선수촌이나 유럽 전훈에 매달리겠습니까』 유선희는 평소대로 말이 없었으나 박 감독은 울고 있었다. 【삿포로=신동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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