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동화엔텍 - '선박의 심장' 식혀주는 열교환기 분야 세계 빅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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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본사를 둔 동화엔텍의 김강희(76.사진) 회장은 노력파로 통한다. 그는 1980년 회사를 설립한 뒤 매일 공장을 둘러보는 것을 물론 말단 직원까지 생일을 꼬박꼬박 챙겨준다. '대리급 회장'이란 소리까지 듣는다.

동화엔텍은 국내 최대 선박용 열교환기 회사다. 세계 5대 업체 중 하나다. 열교환기는 엔진의 과열을 막아주는 기기로 자동차에서 라디에이터의 역할을 하는 장비. 이 회사는 올해 수출 5000만달러 탑을 받았다. 올해 매출 960억원의 절반을 수출이 차지한 셈이다. 지난 10년간 회사 규모는 5배로 성장했다. 기술력도 인정받고 있다. 롤스로이스와 함께 차세대열교환기 개발에 들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롤스로이스 관계자는 "한국의 열교환기 업체 중 기술력과 경영투명성에서 탁월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한국해양대학을 졸업한 김 회장은 자연스럽게 해운공사에 취직했고 1970년대에는 공무부장까지 올라갔다. 그의 업무는 선박 검사였다.

"당시 배가 한번 들어오면 한 두 주 정도 쉬며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많은 선박들이 일본까지 가서 수리를 해오고 있더군요. 그게 늘 의아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거래하던 선박의 기관장들에게 '왜 아까운 외화를 낭비해야 하는가, 우리가 직접 회사를 만들어 수리하면 될 것 아닌가'라며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74년 뜻을 같이 하는 기관장 등 모두 33명이 2백만원씩 내 6600만원을 모아 '종합해사'라는 수리회사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80년에는 지금 동화엔텍의 모체가 되는 동화정공이라는 열교환기 수리회사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실수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수리하는 것보다 신속하고 싸다 보니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수리업이 궤도에 오르자 김 회장은 열교환기를 직접 제작하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실패를 거듭하다 84년 마침내 완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하지만 한국의 무명 중소업체가 만든 열교환기를 선박회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자금난이 심해져 회사가 문을 닫을 상황에 처했다. 평소 꼼꼼한 수리에 믿음을 갖고 있던 범양상선 등에서 동화엔텍의 제품을 쓰겠다는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외국선주들은 외면했다. 이 때 결정적 도움을 준 인물이 바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세계 시장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주요 부품과 기자재는 수입에 의존했다. 정 명예회장은 "지금 우리는 껍데기만 팔고 있다. 이러면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며 기자재 국산화를 강조했다. 정 회장의 지시로 따라 현대중공업의 국산화개발팀은 동화엔텍의 열교환기 실력을 인정하고 주문을 내려 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에 배를 의뢰한 선주들이 반대했다. 정 회장은 동화엔텍 제품을 부착하는 것을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또 현대중공업과 교류가 있던 독일 회사와 기술 협력을 할 수 있도록 주선까지 해줬다. 제품은 아무 문제없이 작동했고 외국 선주들도 동화엔텍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애국심에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동화엔텍은 순풍에 돛단 듯 성장을 거듭하다 97년 외환 위기 때 다시 어려움에 처했다. 매출이 크게 줄었고 은행들은 대출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노조가 나서 스스로 임금을 깎고, 야간작업을 하며 원가 절감에 앞장선 것이다.

김 회장은 "사실 노조가 생길 때 아예 회사를 접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있었다"며 "노조가 회사의 구원 천사로 나서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회사가 안정된 후 '가족사랑모임'이라는 노조 이름까지 지어줬다. 노조가 생긴 이래 동화엔텍은 26년간 단 한건의 노동쟁의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동화엔텍의 가장 큰 화두는 중국이다. 중국은 2015년까지 조선분야에서 한국을 넘어서겠다고 벼르고 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선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그래서 동화엔텍은 내년 상하이에 열교환기 공장을 설립한다. 김 회장은 "상하이 공장이 내년 11월 완공되면 동화엔텍은 세계적인 회사와 규모의 경쟁을 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조용탁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안윤수 기자

※이 기사의 상세한 내용은 중앙일보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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