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울먹이는 쿠웨이트/본사 두 특파원 첫 입성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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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자치군 “질서… 질서…”/검문 한번없이 쿠웨이트시 도착/유전연기로 칠흑같은 하늘/국경도로엔 부서진 탱크·트럭 즐비
해방된 쿠웨이트시는 7개월간의 고통속에서 벗어난 시민들의 환호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중앙일보 사우디아라비아 취재팀의 김주만·김상도 특파원은 27일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에서 한국의료지원단의 협조를 받으며 북상,1백30㎞ 떨어진 쿠웨이트시를 취재,쿠웨이트해방 모습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다음은 쿠웨이트시 취재기다.<편집자주>
『알 쿠웨이트 후루일라』『알 쿠웨이트 후루일라』(쿠웨이트 자유)­. 쿠웨이트시가 해방된 27일.
시내에는 이라크로부터의 해방을 자축하는 시민들의 환호소리로 뒤덮였다.
이라크의 지배아래 숨죽인지 2백8일.
갇혀있던 집에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며 『해방』을 외쳤고 『알 쿠웨이트 후루일라』라고 소리치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승용차의 경적소리,기관총의 공포소리,함성소리,노랫소리가 뒤범벅돼 온거리에 울려 퍼졌다.
쿠웨이트시 중심부로 진입하는 제4순환도로는 이날 주변도시로 피난했다 돌아오는 시민들의 승용차로 물결을 이뤘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 곳곳에는 다국적군과 이라크군 탱크·트럭들의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있어 치열했던 시가전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었다.
군인이나 경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은채 기관총을 든 쿠웨이트 자치군들이 질서를 호소하면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으나 시가지는 혼란상태에 빠져들고 있는듯 했다.
건물들은 거의 부서지지 않은채 옛 주인을 맞고 있었다.
한 시민은 『다국적군의 공습은 한번도 없었다. 이라크군이 문·유리창 등을 부수고 약탈했다』고 말했다.
문교부건물이 들어서 있는 무바라크가에서 만난 나자 무딤씨(43)는 부인·자녀 등 4명과 숨어 지냈다며 『이라크군이 부녀자를 포함,무수한 사람들을 죽였다』고 밝혔다.
또 다마드 알카탄군(18)은 『이라크군들이 금요일이면 시민들을 모스크에 모두 모이도록 강요했다』며 『우리동네에서만 3백여명이 이라크에 인질로 잡혀갔다』고 울먹였다.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국경을 넘어 쿠웨이트시로 가는 1백32㎞의 길은 파괴된 아스팔트,부서진채 길가로 치워져 있는 각종 군장비들로 폐허가 돼있었다.
소련제 T­72탱크등이 포탑이 날아간채 앙상한 모습만 남아 다국적군의 공습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말해줬다.
또 도로를 일정한 간격으로 좌우로 파괴해 정교한 폭격을 실감케했다.
쿠웨이트시가 가까워지자 길양옆 멀리서 보이는 유전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다 아래로 내려와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중앙일보 걸프전쟁 취재팀은 27일 쿠웨이트국경을 넘어 쿠웨이트시내까지 들어가 취재했다.
국경검문소를 비롯,쿠웨이트시까지 접근하는 과정에서 만난 모든 검문소는 취재팀과 동승한 한국의료지원단 장교의 설명을 듣고 무사통과됐다.
국경검문소에는 영국 BBC방송 취재단을 비롯,서방기자들이 40여대의 차량행렬을 검문소에 세워놓고 통과되지 않아 안타까워 하는 모습들이었다.
취재팀이 한국군 승용차로 국경검문소를 통과하자 부러운 눈빛이었다.
취재팀이 지난 24일 방문했던 때와는 달리 최초의 격전지였으며 쿠웨이트 진입 관문인 카프지는 다국적군들이 다수 주둔하면서 검문소를 설치,운영하고 있었다.
카프지 검문소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질문등이 계속됐다.
쿠웨이트국경을 넘자마자 쿠웨이트 출입국관리소로 쓰이던 건물에는 쿠웨이트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쿠웨이트 군인들이 취재팀을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다국적군과 이라크군의 첨예한 대치지역이었던 국경부근의 도로는 왕복 6차선중 한쪽 방향인 3차선의 아스팔트가 파괴돼 있었으며 부서진 탱크·트럭 등의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 도로로 북상하는 도중 쿠웨이트시로부터 내려오는 다국적군 탱크의 행렬등이 눈에 띄어 쿠웨이트 북부 이라크 국경지역의 전투가 끝나가고 있음을 말해줬다. 또 도로위에는 팬 폭탄자국을 메우느라 불도저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라크군은 국경부근 길옆에 컨테이너를 쌓아 방어진지를 구축했던듯 길 양옆에는 부서진 컨테이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라크군은 도로를 밭을 일구듯 파헤쳐 놓고 다국적군 공격에 대비한듯 했다.
그러나 국경부근에서만 전투흔적이 많이 눈에 뛸 뿐 국경에서 쿠웨이트시에 이르는 1백30여㎞에는 전투흔적이 별로 없어 이라크군은 국경에서 무너지자 곧바로 등을 돌려 퇴각한 것으로 보였다.
쿠웨이트시로 가는 도로 양옆에는 석유왕국이라는 별명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무수한 유전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러나 불타고 있는 유전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로 인해 하늘은 검게 변해 있었으며 주변의 대지마저 검은 잿가루로 뒤덮여 있었다.
유전에서는 간간이 폭발음이 들리면서 불꽃이 솟아 오르는 모습도 보였다.
쿠웨이트시로 가는 길옆에는 치열한 전투를 끝내고 탱크옆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우디군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 탱크에선 포신에 담요를,포탑에는 여러가지 옷가지를 널어 말리는 한가로운 풍경도 보였다.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시로 가는 길에는 검문이 전혀 없어 이미 종전된 듯한 느낌이었다.
쿠웨이트로 향하는 길에는 이라크군 포로수송용으로 보이는 버스·트럭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후송용차량은 포로수가 너무 많아 군용차량이 부족한듯 일반버스도 많이 눈에 띄었으며 심지어 가축을 실어나르는 듯한 밀폐된 트럭 모습도 보였다.
쿠웨이트시 진입도로 한 옆에는 다국적군 트럭이 햄버거를 잔뜩 싣고 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쿠웨이트 어린이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햄버거를 받아들고는 좋아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그다지 배고픔은 없었던듯 보였다.
쿠웨이트 시내로 진입하면서 취재팀은 길 양옆에서 환호하는 시민들로부터 마치 해방군같은 환대를 받았다.
시민들은 승용차옆으로 다가와 엄지손가락을 펴보이면서 『어디서 왔느냐』고 묻다가 『한국인이다』고 말하면 『오 꾸리아』하면서 친근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국건설회사들이 진출해 있어서인지 「꾸리아」를 낯설어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환호하는 시민들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검은 차도르를 입은 쿠웨이트 여성들.
사우디와는 달리 개방적이어서 자동차운전도 허용되고 있다. 차를 운전하는 여성들도 남자들이 경적을 울리자 따라 울리면서 환호했다.
길 옆에 선 여성들은 대부분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다리를 드러내고 몸을 흔들면서 소리를 지르는 여성도 있었다.
쿠웨이트시가 몰려나온 시민들로 소란상태에 빠지면서 소총·기관총을 휴대한 시민들이 공포를 마구 쏘아댔다.
이라크군이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소총·기관총들을 공중을 향해 마구 쏘아대 마치 시가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줄 정도였다.
오후 6시 쿠웨이트시내를 빠져나와 사우디 다란으로 가기 위해 국경으로 향하는 제4순환도로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으며 유전에서 타는 불꽃만이 하늘을 붉게 비추고 있었다.<김상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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