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작전 순조” 이라크 “결사항전”(걸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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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다국적군 사기 최고조 시간끌면 손해/세계여론 의식 이라크 진입은 안할듯/미 지상군 투입 왜 서둘렀나
미국은 지상군을 투입하던 날이 기상조건이 바다는 썰물인데다 반달이 떠있어 작전하기는 최상의 조건이 아니었는데도 이를 강행했었다.
미국이 이같이 지상군 투입을 서두른데는 정치적·군사적 필요성 때문이었다.
특히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하루나 이틀 더 기다려달라는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시한 8시간을 넘기면서 공격을 개시했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철수 최종시간을 못박을 때부터 더이상 지체하다가는 소련과 이라크의 외교적 지연책에 말려 연합국간의 균열만 생긴다는 판단과 함께 소련이 제시한 중재안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확실한 입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군사적으로는 지금 시점에서 지상군 투입을 중지할 수 없을 수준으로까지 이미 선을 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전선의 지뢰나 장애물을 제거하고 야포등을 전진배치시킨 마당에 다시 지상군투입을 늦췄다가는 오히려 연합군만 역으로 타격을 받는다는 작전상의 이유도 있었다는 것이다.
또 몇개월간의 지상전 준비로 연합군의 사기나 준비태세가 최고조의 상황에 이르러 더이상 시간을 끌 경우 오히려 전력의 하강길을 걸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기대이상으로 지상전이 순조롭게 진행돼 나가자 어느 선에서 전쟁을 끝내느냐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왜 지상전을 시작했으며 전쟁을 얼마나 계속할 것이냐의 의지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가 무조건 철수를 사실상 받아들였는데도 지상전을 감행한 것은 소련과 몇가지 점에서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차이점은 사담 후세인에게 어느정도의 책임을 물을 것이냐에 관한 것이었다.
이미 지상전이 시작된 이 시점에서도 미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따라 지상전 양상이 달라진다.
미국이 만일 완승을 목표로할 경우에는 전쟁이 쉽게 끝나기는 어려우며 많은 희생자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쿠웨이트를 점령했던 이라크군들은 점령의 정당성 문제등으로 저항에 소극적이어서 연합국이 쉽게 승리할 수 있었으나 전쟁이 이라크영내로 옮아갈 경우 영토를 침략당했다는 감정 때문에 반격이 거세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사담 후세인은 이같은 군사적 계산 뿐 아니라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함으로써 마각을 드러냈다고 정치선전을 할 목적으로 연합군을 이라크내에 끌어들이는 작전을 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부에서는 후세인이 이러한 유인을 위해 화학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비록 사담 후세인이 살아 남는다해도 전장을 쿠웨이트 이상으로 확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의 공화국수비대를 공격하기 위해 일부가 측면으로 이라크 국경을 넘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들도 바스라시 이북으로는 진격치 않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작전이 끝나는 즉시 이라크 영내에서 즉각 철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지상군 투입으로 이라크군을 재기불능할 정도로 약화시키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담 후세인에 대한 징벌은 간접적인 효과에 맡긴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쿠웨이트에서의 패배로 후세인은 버티기가 힘들 것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경제제재는 계속해 간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적으로는 작전종료시기,포로교환 등의 문제와 패주한 이라크군의 재결속을 어떻게 막으며 재무장을 저지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후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개전 하루만에 9천명 투항 전의상실/최악의 경우 미국안 전면수용 가능성
다국적군의 전면 지상공격 감행으로 일단 군사적 수세에 몰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지금 취할 수 있는 카드는 극히 제한적인 상황이다.
후세인이 소련의 평화안을 수용,무조건 철수를 명백히 했음에도 미국이 최후통첩 시한을 불과 8시간 넘긴 시점에서 그같이 전격 진공을 개시한데 대해 이라크는 내심 당혹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후세인 대통령이 다국적군의 지상전 개시후 7시간만에 행한 대 국민연설에서 『유엔안보리가 우리가 승인한 소련 평화안을 검토키로 결정한 마당에 반역자들은 배신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데서 이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이어 이라크군에 대해 『사정없이(다국적군을) 살육하라』고 촉구하면서 『부시와 그의 군대는 결국 치욕스런 패배를 맛보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나섰다.
후세인 대통령의 이같은 성명과 그에 앞서 나온 바그다드 라디오방송의 군코뮈니케로 미루어 볼때 이라크 최고지도부는 우선 「결사항전」의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지상전 개시후 12시간여만에 노먼 슈워츠코프 미군사령관이 최초로 발표한 전황에 따르면 이라크군이 이미 5천5백명 가량 다국적군에 투항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호너 공군사령관도 이어 3천명의 이라크군이 항복해왔다고 한국공군 지원단과의 면담장소에서 밝히고 있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라크군은 최고지도부의 항전의지 천명과는 달리 개전 첫날 약 9천명의 투항자가 발생할만큼 사기가 저하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이라크 관영 라디오방송은 『이라크군이 지상전이 진행되는 도처에서 다국적군을 격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미 행정부 일각에서는 이라크 지도부가 전황이 자신들에게 극도로 불리해졌다는 분명한 증거가 나타나는 어느 시점에 가서 미국안의 전면수용을 전제로 휴전협상을 제의해올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24일 전투의 종결여부는 사담 후세인에게 달려있다고 말하면서 『이라크가 진정으로 미국의 평화안을 수락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힌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라크의 타리크 아지즈 외무장관은 요르단을 방문,후세인국왕에게 종전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줄 것을 요구하는등 협상을 위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
후세인에게는 이같은 상황이 치욕스런 패배로 보여질 것임은 물론이다.
다국적군이 속속 발표하고 있는 승전보가 사실이라면 이라크가 과연 언제 그같은 휴전협상을 제의해올 것인가가 문제다.
따라서 쿠웨이트시가 다국적군에 점령되고 다국적군이 이라크 남부에 포진하고 있는 이라크 정예 공화국수비대와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 오면 이라크의 태도가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미 군사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같은 시나리오는 물론 이라크가 쿠웨이트는 내주고라도 이라크 국토는 보전하고 후세인정권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전제하에 도출된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이라크가 끝내 휴전제의없이 정예 공화국수비대를 총동원,다국적군과의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결전을 벌이는 경우다.
이때에는 다국적군도 후세인정권의 궤멸을 목적으로 쿠웨이트 뿐 아니라 이라크영토까지 진격해 들어가는 가능성도 지금으로선 예측할 수 있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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