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히틀러처럼 자살 가능성/영 중동전문가가 예상한 걸프전 최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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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살아남아도 경제파탄 직면/측근·군부 반대세력에 의한 축출확률도 높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쿠웨이트에서의 무조건 철수여부에 상관없이 자신이 계속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경우에 따라 그는 히틀러처럼 소수의 추종자들과 함께 자살로 생애를 마감하는 최후의 방법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영국의 한 중동문제 전문가가 20일 영국의 더 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다.
영국의 권위있는 경제전문주간지인 더 이코노미스트의 중동문제 담당자인 데이비드 브래드쇼는 이 기고문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고,설사 후세인이 정치적으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그는 결국 이라크의 경제적 패배를 극복하지 못해 측근 또는 군부내 반대세력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고 말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그의 기고문 요지.
『부시 미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평화안을 거부함으로써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무조건 철수와 지상전중 한가지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어느 길을 택하든 그가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최근 바그다드를 방문했던 한 인사에게 그는 자신이 부하들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죽거나,미국에 의해 순교자로 죽거나 둘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고백한 일이 있다.
최후까지 싸워보자는게 그의 본능이겠지만 그의 부하들까지 그럴 각오가 돼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부하들이 그에게 반기를 들때까지 그는 쿠웨이트를 살육장으로 만들고,또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최후는 히틀러의 최후를 상기시킬지도 모른다.
다국적군이 그의 지하벙커로까지 진격해들어가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추종자들과 함께 그는 독약을 삼킨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현 상태에서 평화안을 수락할 경우 그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가지 결정적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순전히 정치적인 승리는 그에게 아무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그가 권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제적 승리가 또한 필요한 것이다.
미국에 대항해 싸웠고,이스라엘을 공포에 떨게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아랍대중들 사이에 인기를 누릴 수 있겠지만 이것이 이라크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의 지나친 야심이 빚은 파괴적 전쟁때문에 이라크 경제는 쿠웨이트를 침공하던 당시보다 훨씬 더 절망적 상황에 빠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란과의 전쟁이 가져온 비참한 결과에서 벗어나기 위해 쿠웨이트를 점령했다. 대 이란 전쟁은 그에게 6백억달러의 외채를 안겨줬을 뿐 승리의 열매에 목말라 하는 국민들에게 그는 아무것도 주지 못했고,퇴역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도 없었다.
유가하락은 그의 지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해결하고,동요하는 군부의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해 그가 택한 것이 바로 쿠웨이트 합병이었다. 쿠웨이트를 점령한 직후 그가 이라크 국민들에게 한 말은 『조금만 더 참으면 곧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쿠웨이트와 함께 풍부한 석유를 손에 넣거나 아니면 쿠웨이트를 내놓는 조건으로 외채탕감과 대규모 경제재건을 위한 지원을 서방 및 다른 아랍국들로부터 받아낸다는게 그의 의도였었다. 지난 15일 그가 내놓은 조건부 철수제안에도 바로 이러한 의도가 담겨져 있다.
쿠웨이트 점령으로 경제적 실익을 얻기는 커녕 이라크는 그동안 반년분의 석유수입(약 90억달러)과 함께 도로·철도·교량·발전시설·정유공장·통신망 등 기간산업시설의 상당부분을 상실했다.
더구나 전쟁이 끝날 경우 천문학적 액수의 전쟁배상금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쿠웨이트는 이미 4백억달러의 전쟁배상금 청구를 생각하고 있고,일본의 대외무역기관은 지금 당장 종전이 되더라도 이라크에 대한 배상요구액이 2천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가 권좌에 남아있는 한 어느 나라도 이라크에 원조의 손길을 내밀 수는 없을 것이다.
파산한 국가와 파괴된 군대 이외에 국민들에게 보여줄게 아무것도 없다면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실추된 그의 이미지는 곧 그들 군부내 반대파의 희생자로 전락시킬 것이다. 지난 82년의 군부내 쿠데타기도 당시에는 그는 그래도 아랍과 서방국들의 묵시적 지지에 의지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 그는 완전히 외톨이 신세가 되어 있다.
이라크가 처해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심각성을 생각할때 설사 그가 쿠웨이트 철수와 팔레스타인 문제의 연계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쿠웨이트에서 철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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