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멸 부르는 폭로경쟁/전영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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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동주의원 발언 파문 확산/여야 치열한 “이전투구”
수서사건의 여진이 곳곳에서 냄새를 풍기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19일 구속된 김동주 의원(민자)이 밝혔다는 소위 「한보의 민자당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설」의 진위여부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문제의 발단은 민주당의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기욱 변호사가 이날 김동주 의원이 검찰에 소환되기전 변호사수임문제로 전화를 걸어와 한보가 서청원 의원(정책조정실장)을 통해 민자당에 상당액수의 로비자금을 건네주었으며 자신이 구속되는 것은 1노3김의 각 정파에 구속자수를 균배하다보니 민주계의 희생양으로 찍힌 것이라고 말했다고 폭로한데서 비롯됐다.
장변호사는 김의원이 동생을 통해 민주계에서 서의원 대신 김의원을 택한 것은 서의원이 받은 액수가 김의원보다 거액인데다 서의원은 바로 한보민원을 처리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파문을 축소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장변호사는 김의원의 동생이 서의원이 한보에서 받은 돈은 10억원쯤 되고 그중 몇억원을 서의원이 챙기고 나머지를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말이 언론에 보도되자 당사자인 서의원은 민자당 기자실에 황급히 달려와 『김동주 의원과는 차 한잔은 물론 점심 한끼 같이 먹어본 적이 없으며 수서사건과 관련해 단 한마디의 얘기도 나눠본적이 없다』며 『만약 한보로부터 정치자금을 내가 건네받아 당이나 김영삼 대표에게 전달한 것이 사실이라면 정치를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일이 이렇게 번지자 평민당은 잽싸게 박석무·이협·김종완 등 소속의원 6명을 서울구치소로 보내 김동주 의원을 면회했다. 두말할 나위없이 장변호사의 폭로내용을 확인하려는 것이었으며 삽시간에 평민당에는 『민자당이 30억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박상천 대변인이 『김의원이 장변호사에게 30억원 수수를 밝혔다더라』고 한술 더 떴기 때문이다.
민자당,그 중에도 김영삼 대표의 민주계로서는 후끈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바짝 긴장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 민자당은 이날 오후 박희태 대변인을 내세워 공식부인 논평을 발표했다.
고검장을 역임한 바 있는 박대변인은 평민당의원 6명과 김동주 의원간의 대화록을 법무부의 채널을 통해 입수했다며 공개했다. 대화록에는 김의원이 사실확인을 하려던 평민당 의원들에게 『미친 소리』『웃기는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김의원은 『다 끝나가는 마당에 무슨 소리야. 기소가 빨리 돼야 보석으로라도 나갈 것 아니냐』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이전투구가 확대되자 민주당의 박찬종 의원이 또 끼어들었다. 박의원은 자기도 여러 구속의원들을 보기 위해 구치소에 면회갔더니 『김의원은 같이 수감중인 정태수 회장이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재판과정에서 비자금 사용처등 진실을 폭로할 준비가 돼있는 것 같더라는 말을 했다더라』고 전했다.
가위 어느쪽이 암까마귀인지,수까마귀인지 모를 현기증나는 「흘리기작전」이 여야 각 정파간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피차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지 않고 우선 말들을 퍼뜨려놓고 보자는 태도다.
김동주 의원은 구속되기전에 뇌물수수의 부인은 물론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 쳤다가 검사앞에서는 울면서 혐의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또 김대중 총재는 『하늘을 두고 맹세컨대 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지만 나중에 2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
이런 판에 정치인끼리 아무리 시인·부인하고 하늘을 들먹여봐야 국민들 눈에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당당하지 못하게 「흘리고」「폭로하고」「발뺌하는」 행태야말로 어느 한쪽의 유·불리를 떠나 정치권의 공멸을 재촉하는 첩경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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