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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개전후 첫 평화제스처/후세인 태도 왜 바꾸었나(걸프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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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잇단 공습 “일단 피하자” 속셈도/평화노력 분위기에 미도 부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12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특사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에게 걸프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협력할 용의를 표명함에 따라 후세인 대통령은 개전이래 처음으로 평화제스처를 내보였다.
프리마코프 특사가 후세인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고르바초프 친서,즉 소련의 평화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가 이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그동안 전쟁고수의 완강한 입장을 굽히지 않던 후세인 대통령의 유연성 있는 태도로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과연 그의 진정한 속셈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후세인 대통령의 평화제의를 전한 이라크 바그다드 라디오방송은 지난 10,11일까지만해도 이라크가 어떤 휴전안도 거부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이라크가 주변국들의 계속되는 걸프전 평화적 해결 중재노력에 시선을 돌린 것은 그간 중재에 가장 열을 올렸던 이란을 방문한 사둔 하마디 이라크 부총리가 『무조건 휴전을 촉구하는 어떤 제안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데서 비롯됐다.
하마디 부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 11일 튀니스에서 가진 독자적인 기자회견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이라크가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중재안에는 호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이라크는 이란이 중재과정을 통해 종전 후 중동질서 재편에서 쥐게될 발언권 확대를 우려한 듯하다.
다국적군의 계속된 공습으로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이라크군의 통신·병참·보급로 등 상당한 전력손실을 본 후세인으로서는 일단 평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다국적군의 공세로부터 한숨 돌릴 수 있는 유효한 방편임을 인식했을 것으로도 분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중동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여온 이란보다는 과거 자신의 후원자였던 소련측의 평화구상에 동조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역시 적극적 중재노력으로부터 확보하게될 실익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9일 걸프전과 관련한 담화에서 후세인 대통령에게 「현실감각」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다국적군의 공습이 유엔안보리 결의안,즉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라는 목표를 넘어서서 지나치게 진행되고 있다며 특히 미국의 군사행동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쿠웨이트는 이미 파괴되었으며 앞으로 미국주도의 다국적군 공습이 계속될 경우 이라크마저 궤멸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이 이번 걸프전을 중동에서의 영구적 군사이익을 얻으려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는 소련군 장성들의 강한 비난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이라크가 회생불능할 정도로 파괴된다면 중동질서의 재편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며 과거 이 지역에서 시리아 및 이라크를 통해 행사해온 소련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미국의 임의대로 중동지도가 그려질 것을 우려한 것 같다.
소련은 앞으로도 종전후 자신의 외교적 영향력 확대를 노려 걸프전 평화중재노력을 가속화할 전망이며 이라크가 이에 호응하게 된다면 안그래도 이란 및 비동맹국들의 중재가 속속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도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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