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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지원과 국익/김두겸(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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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걸프전이 터지기 전만 해도 냉전후의 세계는 지오 이코노믹스(Geo Economics) 시대가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했다. 그동안 세계정치를 지배했던 군사력 우위의 지오폴리틱스(지정학)시대는 끝나고 경제력이 말을 하는 「지경학」시대가 시작된다는 견해였다.
그 근거는 다름아닌 냉전시대의 두 군사대국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약화 및 몰락이다. 소련은 냉전 패전국으로서 이미 국제정치에 대한 영향력·지배력을 상실한지 오래고 미국도 국력약화와 일본·독일의 부상 등으로 더이상 세계의 경찰관 노릇을 하기에는 힘이 벅찬 상태라는 논리였다.
3차대전이라고도 불리는 「냉전」자체도 따지고 보면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에 의해 종결되었다. 1,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3차대전의 주전장은 경제분야였고 주전력도 총칼 아닌 경제력이었다. 이 경제전쟁에서 공산진영이 완패함으로써 전후 세계질서는 경제력에 의해 재편될 수 밖에 없다고 본 것이었다.
세계질서는 「지오 폴리틱에서 지오 이코노믹스로」­. 미국의 전략이론가 에드워드 루트워크는 자신있게 말했다.
지오 폴리틱스란 군사력으로 움직여가는 지리적 정치역학이다. 이제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힘은 이 군사력에서 경제력으로 이행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지역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러면 한정적이긴 하지만 군사력이 국제정치의 동향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그 단서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걸프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걸프전이 단순한 한정적·한시적 지역분쟁으로 끝날 것으로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설사 걸프전이 중기전정도로 끝난다 해도 지오 이코노믹스 시대의 도래는 좀 더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미국이 걸프전을 국지전·지역분쟁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미 지도부는 걸프지역의 평화를 되찾는데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전쟁을 계기로 전후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책임자가 되겠다는 의지다.
미국민의 자세도 달라지고 있다. 베트남전쟁 이후 자기부정적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그들이 걸프전을 맞아서는 다시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것같이 보인다.
대 이라크 공격명령을 내리는 부시의 결연한 의지에 박수를 보내고 미국이 더이상 「몰락하는 강대국」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고 있다는 보도다. 이 때문에 부시에 대한 지지율도 79%를 기록하고 있다. 취임이후 최고의 지지율이다.
부시의 배짱,미국민의 결의는 이미 확고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바로 「세계를 지휘하는 미국」이다.
강대국의 위상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군사력과 국민적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것은 역사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전쟁에는 언제나 코스트가 따르는 법. 바로 여기에 미국의 고민이 있다. 이번 전쟁으로 가뜩이나 취약한 미국경제가 더이상 타격을 받아선 곤란하다. 미국경제력에 대한 큰 손상없이 전쟁을 훌륭히 치러낼 수 있는 묘수,그것은 곧 전쟁비용을 동맹국들에 분담시키는 것이다.
「미국만의 전쟁이 아니다」­. 일본에,독일에,한국에 대한 미국의 이 말은 바로 이같은 논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전비에만 그치지 않는다. 「유엔이 집단으로 후세인을 응징하려하고 있는 이때 일부 우방국들이 이를 모른체한다면 이는 곧 평화를 위한 노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로 규정하겠다는 자세다.
평화를 위한 노력없이 세계평화의 수익자가 되겠다는 억지는 물론 통하지 않는다. 경제의 글로벌화는 정치의 글로벌화를 요구하고 전쟁이 터지면 전쟁의 글로벌화도 불가피해지는 세상이다. 이는 곧 전비의 글로벌화,동맹국으로서의 기여를 강요한다.
정부도 이같은 논리에 입각해 이미 의료지원단을 파견했고 곧 군수송기도 보낸다는 일정이다. 전비 지원규모도 5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이정도의 성의에 만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차제에 우리의 입장도 한번 더 냉철히 되돌아 볼 필요도 있다. 한국은 더이상 변방의 허약한 소국도 아니고 과거처럼 열강이 만들어 주는 「질서」에 순종만 해야 하는 열등국도 아니라는 강경한 목소리도 들린다. 한편으론 「국내사정」을 내세워 더이상 깊숙히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아시아의 냉전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질서가 여전히 지오 폴리틱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한반도평화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일국평화주의」도 아닌 「반쪽평화주의」가 과연 새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이번 걸프전은 미국의 의지대로 질서있게 치러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경제력이나 군사력 어느면을 봐도 다국적군의 승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사의 방관자가 되지 않고 한반도평화도 보장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새겨봐야 할 시점이다.<뉴스위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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