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추적] 이명박 '두 자릿수 호남 지지율' 실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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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인가 실체인가.

호남 지역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불어대는 높은 인기를 놓고 정치권 논란이 거세다. 호남 지역은 한나라당엔 동토(凍土)로 여겨진다. 당의 공식적인 지지율 목표가 한 자릿수를 넘기는 것(10%)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소속 대선 예비주자인 이 전 서울시장의 호남 지역 지지율은 두 자릿수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9월까지만 해도 한 자릿수에 머물렀지만, 10월 초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10%를 넘어서더니, 최근 여론조사에선 20%대까지 넘보고 있다. 물론 30~50%를 오가는 호남 출신 고건 전 총리엔 훨씬 못 미친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예비주자로선 이례적 인기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호남에서 얻은 표는 고작 14만5000여 표. 호남 지역 유효투표수 270만여 표의 4.87%에 불과하다. 1997년 대선에서 그의 호남 득표율은 3.3%였다. 여러 갈래의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 "호남은 변신 중" vs "거품 인기 결정판"=이 전 시장 측은 "이 전 시장에 대한 경제 이미지가 호남 지지율을 끌어올린 만큼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호남의 지식인과 기업인을 중심으로 '탈정치, 경제 우선'의 바람이 불었고, 이런 바람이 호남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광주 출신으로 이 전 시장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호남 사람들도 '경제를 살리고 봐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입장으로 많이 돌아섰다"고 했다. 또 다른 이 전 시장 쪽 의원은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던 호남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속속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지식인 모임에 가입하는 게 사례"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이런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호남에서 '이명박 바람'은 대표적 거품 사례"라며 "범여권 후보가 없는 탓에 오갈 데 없어진 호남 표가 이 전 시장에게 일시적으로 몰리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이어 "호남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의 이 전 시장에 대한 인기도 비슷한 현상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측근 의원은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에 비해 한나라당 냄새가 덜 나기 때문에 호남 사람이 상대적으로 덜 기피하는 것일 뿐"이며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여당 성향 표는 여당 후보가 결정되는 순간 전국적으로 거품이 쭉 빠질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 쪽에서 뛰는 이성헌 전 의원은 "두 사람의 호남지역 여론지지율 차가 오차범위 내에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많다"며 "박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이 전 시장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했다.

◆ 전문가들 "어느 쪽이 맞다고 단언 못해"=여론 전문가들은 "양쪽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어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은 "범여권 후보가 확정되면 이 전 시장에 대한 호남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제했다. 그런 뒤 그는 "호남 여론을 주도하는 40대 유권자의 요구와 이 전 시장의 이미지가 부합하는 측면이 커 이 전 시장에 대한 지지를 실제로 철회할지는 불투명하다"고 했다. 정치 컨설팅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호남 표를 강력히 결집시킬 수 있는 여당 후보가 나오느냐, 이 전 시장이 보다 강력한 이미지를 호남에 심을 수 있느냐의 두 가지 변수에 달려있다"며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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