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끝내며 좌담회(「예체능입시」를 벗긴다: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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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뼈저린 자성거쳐 해결책 내놔야”/대중과 멀어지면서 부정 싹터/물불 안가리는 부유층 교육관도 문제/도덕적 각성없는 제도개선 효과없어/전문 예능교육기관 설립 시급
서울대 입시부정사건을 계기로 예체능계 입시의 뿌리깊은 부패상이 드러났다. 많은 사람들은 막연한 소문이 실제적 사실로 나타난데 대해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한편 예체능계의 발전과 대학의 권위확립,그리고 우리사회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이번 기회에 예체능계의 관례화된 범법행위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관계 전문가들의 좌담을 통해 예체능계 입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처방을 찾아본다.
□참석자
문호근씨<한국음악극연구소 대표>
이숭리씨<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공동대표>
강무섭씨<한국교육개발원 교육계획 연구부장>
▲문=예술인의 한사람으로서 이번 사태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뿌리깊은 입시부정을 척결하고 예체능계가 뼈저린 반성을 통해 새출발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비슷한 시기에 국회의원 뇌물외유사건이 터졌는데도 시민들의 관심은 입시비리쪽에 더 쏠린듯 합니다.
아무래도 모든 학부모들에게 남의 일이 아닌 교육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겠지요.
▲강=우리의 문화정책이 기형으로 흐른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대학예능계 교육조차 대중적 기반없이 일부 소수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별세계의 것」으로 변질되어 왔습니다. 바닥이 좁을수록 무리가 통하고 편법이 판을 치게 되는 법입니다.
▲문=이번 입시부정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교수들은 대부분 제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순수한 열정으로 음악을 택했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공부해 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타락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은 현재의 음악이 대중과 유리된채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됐다는데 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예체능계 입시에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게된 것은 돈은 얼마든지 있는데 자식은 공부를 못해 고민인 학부모들이 이 분야에 허점이 있음을 알고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일반계 입시에서는 돈으로 합격증을 사겠다고 설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까.
관련교수·예술인들의 책임 못지않게 학부모들의 잘못이 크다고 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무슨짓을 해도 죄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이런 잘못된 생각이 바로잡혀야 하고 바로 잡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자식을 바로 키울 수는 없습니다.
▲강=대입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객관적 기준에 의해 평가가 이뤄지는 일반계 입시의 틀속에 완전히 주관적 판단에 의해 평가되는 예능계입시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 모순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천재성을 지닌 학생도 필기고사 부담에 시달려야 하고 별 재능이 없는 학생도 심사위원들을 구워 삶아 뒷구멍으로 입학하려는 미련을 못버리게 되지요.
▲문=이번 사건으로 예체능계 공동관리제가 별다른 효과가 없음이 입증됐지요.
교육부에서는 제도의 운영을 한층 강화하거나 아예 학생선발권을 대학측에 일임하자는 등의 개선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공동관리제는 자기가 가르칠 학생을 자기손으로 뽑지 못한다는 원론적 모순이외에도 심사위원들의 책임감이 결여돼 오히려 부정과 야합할 소지가 많은 등 문제점이 많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제도운영을 강화하는 것은 그만큼 부정의 수법이 교묘해지고「사례비」단가만 올리는 역효과가 우려되며 대학측에 일임하는 것은 현재 대학사회와 예체능 교수들의 썩어빠진 정신상태로 볼때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 될 뿐입니다. 예술인들의 자존심 회복·윤리적 각성이 선결과제입니다.
▲강=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예능계대학이 지역별 또는 연합체별로 실기고사를 공동으로 실시해 정원의 1백20∼1백50%를 먼저 뽑은 다음 지원 대학별로 필기고사를 치르는 방법은 어떨까 합니다. 심사위원 숫자가 많아지는데다 특정 수험생을 봐주려해도 나중에 객관적 평가절차가 남아있으므로 합격을 약속할 수도 없어 어느정도 부정방지에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문=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체능계의 경우 실기능력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레슨이 많은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근절되지 못하는 것은 이 분야의 공부는 「도제식 수업」이 가장 효과가 크기 때문이지요.
예능계 대학의 입학목적을 예능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학졸업장을 따내기 위한 데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음악원·미술원과 같은 전문 예능교육기관의 설립·운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강=동감입니다. 연주가나 화가로 클 학생은 조기에 능력을 계발·신장해 예중·예고를 거쳐 음악원이나 미술원으로 진학토록 해야 합니다. 이들에게는 학사증과는 다른 예능기능증명서를 수여하고 이 증명서가 그 분야에서 쳐주는 자격증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반대학 예능관련 학과에는 이 분야를 학문적으로 공부할 학생을 입학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실기능력으로 들어가는 교육기관과 일반 공부로 들어가는 교육기관으로 2원화가 되며 상호 보완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겁니다.
▲이=미국 하버드대나 예일대,일본 동경대 등 외국의 유명종합대에 음대나 미대가 있다는 얘기는 못들었습니다. 그러나 음악원·미술원 등이 설립되려면 그 이전단계로 예능 영재들을 조기교육시킬 수 있는 초·중·고단계에 특수교육기관의 설립과 확충이 시급하겠군요.
▲강=이번 입시파동으로 정당한 노력에 의해 대학에 들어간 수험생과 학부모,양심적인 교수,예술가들까지 많은 피해를 봤을겁니다. 또 가난하지만 재능있는 예술가지망생들이 지레 예술가의 꿈을 포기하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부작용도 있었다고 봅니다.
▲문=예술인들이 자성해야 합니다. 대중과 유리된 예술은 더이상 예술이 아니예요. 지금 에체능계 입시부정이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예술인들을 보세요. 각성하자는 성명서 한장 나옵니까,정화캠페인이 벌어집니까. 그저 고개숙이고 「어서 이 거센 바람이 지나갔으면」하고 몸조심에 급급할 뿐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때 해결책은 외부에서 나오는게 아닙니다. 안에서부터 나와야 합니다.
▲이=학부모를 포함해 우리모두가 무엇이 선이고,무엇이 악인지 가치기준을 확실히 해야겠어요.
갈수록 교육에 대한 관심은 커지는데 교육은 나빠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는 바로 잡혀야 합니다.<끝><정리=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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