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도 없는 결의문 채택(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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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백35개대의 총·학장이 모여 회의를 하는만큼 예체능 입시부정등 좀더 현실적으로 제기된 문제에 지혜를 모읍시다.』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 코스모스홀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13차 정기총회.
최근의 입시부정파동을 외면한채 지엽말단적인 문제를 논의하는데 2시간여를 소비하자 S대 이모총장이 벌떡 일어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온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고 해결을 기대하는 문제이니만큼 뭔가 좀 얘기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총장의 호소는 계속됐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시간이 너무 지연됐으니 그만 해달라』는 박영식 협의회장의 「제지」에 마이크를 놓아야만했다.
지난달 23일 음·미대 부정입시사건이 터진 이래 온 국민의 관심을 끌어온 「상아탑의 비리」로 인해 전국 1백35개대 총·학장이 모인 이날 회의는 모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사실상의 종합토론시간인 오전 2시간은 지리한 업무·결산보고로 메워져 갔다.
그나마 유일하게 「논쟁」이 붙었던 것은 협의회 사무총장의 정보비 문제.
『대학총장의 정보비가 월 1백20만원인데 협의회 사무총장이 어떻게 1백30만원을 받을 수 있는가.』
『다른 교육부 산하단체 사무총장도 모두 1백30만원을 받고 있어 동등하게 인상했다.』 회의는 핵심을 떠나 변죽만 울리고 있었다.
S대 J총장등 여러명의 총장들은 회의실 밖에서 신문을 들고와 펼쳐보는등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음을 드러냈다.
낮 12시29분쯤 점심시간중 가진 기자회견에서 박 협의회장은 회의가 전혀 토론과 결의가 없었음에도 이미 집행부에 의해 작성된 결의문을 들고와 발표함으써 이날의 회의가 「형식」에 불과함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아픈 상처를 재론하기 싫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오늘회의는 뭔가 다르리라 생각했는데 들러리만 선 느낌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30여명의 총장만이 남아있는 회의실을 떠나는 한 노총장의 말은 모든 대학관계자들의 허탈한 실망감을 반영해주는 듯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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