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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가사도 한글 가사처럼

중앙일보

입력

요즘 웬만한 노래들엔 거의 영어 가사가 섞여 있다. 어떤 노래들은 아예 영어 가사로만 불린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가사를 어떻게 평가할까. 뉴스위크 한국판에서 일하는 영어 원어민들에게 가사 전체가 영어인 노래 두 곡을 들려주고 의견을 들어봤다. 아울러 한글 노래를 영어로 번역해 앨범에 함께 실은 밴드 YB의 노래 세 곡의 원곡과 영어 번역곡을 모두 들려주고 그 느낌을 비교하도록 해봤다.

‘. . . It’s never erased (just covered) / I know it because I’m woman / They’ll exist as long as you exist / But I can’t change your brain / But I can’t kill you for that / cause I love you / . . . / I couldn’t stand anymore / If I couldn’t kill you / There no way but killing myself / I drink my brain instead of eating yours. . . ’(네스티요나의 ‘Covered’)
‘. . . / All the love you gave to me / All the lies you said to me at night / I loved you so, it didn’t matter then (I just can’t live without your love) / Even after all I had, (Oh, girl) I can’t leave you in my past / I will promise you / My love will be so true / Forever with you. . . ’(성시경의 ‘Forever with You’)

“네스티요나의 노래는 멜로디와 함께 들으면 좋지만 가사가 너무 막연해서 무슨 말인지 금방 와닿지 않는다. 미국 노래도 문법을 다 지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be 동사나 to 부정사 용법 등 기초적인 문법 내용은 지킨다. 언더그라운드 밴드일지라도 기초문법은 확인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노래를 발표하기 전에 영어 원어민에게 한번쯤 들려줬더라면 좋았겠다. 성시경의 노래 가사는 문법이 나무랄 데 없고 발음도 훌륭하다. 하지만 love, forever, without you, true 등 너무 흔한 표현들이 나열되다 보니 오히려 노래의 감흥이 줄어든다. 종종 한국 노래를 들으면 외국 노래에서 몇 소절씩 따다 붙인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주관적인 판단이니 전적으로 옳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두 가지 점은 참고할 만하다. 우선 기본적인 어법에는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이 간과하는 대목이다. 둘째는 기왕에 영어 가사로 만들려면 한글 가사에 버금가는, 듣는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밴드 YB는 위의 두 경우와 달리한 노래에 한글판과 영어판이 동시에 있다. “80~90년대의 정통 록밴드를 연상시킨다. 노래도 좋고 가수의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영어 발음도 괜찮다. 하지만 문법적으로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 지켜지지 않아서 좀 거슬린다. 사소해보이지만 이런 부분이 노래 자체의 인상을 그르친다”고 뉴스위크의 영어 원어민은 말했다.

‘On this lonely dusty highway / All the signs fades away / Thought I found this perfect place. . . / Come seize the day / just fly away. . . ’(YB의 ‘Heaven’s Bus)
‘Everything came my way / suddenly faded away / Under this blue subway / my tracks are painted in grey / Just keep on turning / Just keep on burning / Riding on heart of stone / here again I go alone. . . ’(YB의 ‘It Burns’)
‘So this is my my Hollywood / So this is your, your Hollywood / You wanted all you had it all / You flew too high now / your wings are dry. . . ’

그리고 영어 원어민들은 “쓸데없이 반복되는 라임(각운)이 노래의 격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힙합과 달리 로큰롤은 라임이 중요하지 않다. 가사가 아무리 좋아도 라임이 반복되면 유치하게 들린다. 어린 아이들 동요 같다고나 할까?” 진부한 표현도 문제다. “목소리와 멜로디는 너무 좋지만 가사가 너무 진부하다”는 평가는 대부분의 영어 노래가 받는 비판이다.

YB의 소속사인 다음기획의 탁현민 실장은 “한국어든 영어든 노래는 가사 자체의 문장적 완결성보다 가사와 곡이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노래 가사는 단지 문장 자체로만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오히려 영어 가사를 안 듣고 한글 가사로 들으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가사 내용을 모르고 어감과 멜로디만 들을 때가 더 좋았다”고 영어 원어민이 말하는 대목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피할만한 진부한 단어 몇 개와 피상적인 문장 한두 개 때문에 애써서 만든 노래를 망쳐버린다는 얘기다.

이처럼 영어 원어민들은 외국 사람들이 한국 노래를 즐길 때 “영어 가사가 필수조건은 아니다”고 말한다. “한글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도 멜로디가 마음에 들고 귀에 익으면 한글 가사를 따라 부른다”고 뉴스위크 한국판의 한 네이티브 스피커는 말했다. 사실 우리가 영미의 록 음악 가사를 모두 알아서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저 멜로디와 느낌만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뜻도 모르는 가사를 흥얼댔다. 국제화에 반드시 영어 가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오히려 지나친 영어 강박증에 좋은 노래들이 망가지는지도 모른다.

이정명 기자 ikk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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