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못 받은 선수? 검증받아야 할 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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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만이 금메달을 딴 가운데 도하 아시안게임 야구가 끝났다. 시상식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동메달을 목에 건 한국 선수들은 9일 귀국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한국 야구의 현주소가 드러났다. 3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4강은 몇몇 스타의 힘에 의존한 결과였다. 큰 무대에서 실력을 쌓은 선수 없이는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어렵다는 게 결론이다.

'WBC 4강'을 이끈 김인식 한화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가 일본 사회인야구에 지다니 분통이 터져 잠을 잘 수 없었다"면서도 "대표팀을 비난한다고 얻는 것은 없다. 반성의 계기로 삼자"고 했다. 김 감독은 "저변 확대를 위해 이제부터라도 유소년 야구에 눈을 돌리자"고 주장했다.

패장 김재박 감독에게 비난이 쏟아진 이유는 하나다. 김 감독은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뽑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선수"라고 했다. 그때도 여론이 들끓었지만 김 감독은 이를 외면했다. 차라리 "국내 야구에 공헌하는 선수가 우선"이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공교롭게도 한국전에서 홈런 두 발을 때린 대만의 천융지는 시애틀 매리너스 마이너리그에서 추신수와 한솥밥을 먹던 선수였다. 그는 아직도 마이너리그 선수다.

'구단 이기주의'도 한몫했다. 각 구단은 금메달 획득을 전제로 병역 미필 선수를 한 명이라도 더 넣으려고 힘을 쏟았다. 감독이 선발한 선수가 슬그머니 엔트리에서 사라지면서 결속력은 떨어졌다.

경기력에서 한국은 거포 부재의 약점을 드러냈다. 태국.중국.필리핀 등 약팀들을 콜드게임으로 이겼지만 홈런은 거의 없었다. '스몰 볼'이 한국 야구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임에 틀림없다.

당장 코앞에 닥친 일은 2008 베이징 올림픽이다. 야구팬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설욕하자'고 한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본선 진출부터 걱정이다.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은 8장. 주최국 중국을 빼면 7장이다. 한국은 아시아 1위를 차지하거나, 세계 각국이 출전하는 2차 예선 때 3위 이내에 들어야 한다.

야구계는 이번 대회를 교훈 삼아 저변 확대에 힘써야 한다. 현재 초등학교 야구부가 108개, 고교 팀은 56개에 불과하다. 반면 대만은 초등학교 팀은 400개가 넘고, 고교 팀도 80개나 된다. 이대로 간다면 대만 야구가 한국 야구를 완전히 제압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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