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태나 FTA 협상 김종훈 수석대표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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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로 나흘째를 맞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다. 외관상으론 일부 분야 협상이 중단되는 등 난항이다. 우리 측 김종훈(사진) 수석대표에겐 미국 서북부의 오지 몬태나에서의 긴 겨울밤이 더 길게만 느껴질 법하다.

김 대표는 한 달여 전 제주도에서의 4차 협상 장면을 떠올렸다. 그때도 협상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당시 협상의 실타래가 좀처럼 풀리질 않자 김 대표는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와 심야 회동을 했다. 김 대표는 커틀러 대표에게 불쑥 위스키 한잔을 건넸다.

"헤이, 웬디… 갈 길이 아직 멀지만 이제 저 너머로 끝이 보이질 않느냐. 다 잊고 술이나 한잔 하자."

"앰버서더 킴(김 대사), 내일이면 협상이 끝나는데 내 손엔 가져갈 게 하나도 없다."

테라스로 불어오는 바닷바람만큼이나 시작은 싸늘했지만 솔직한 대화 속에 치열한 공방 중 쌓였던 앙금이 차츰 사라졌다. 두 사람은 "다시 잘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래서일까. 이곳 빅스카이에서 진행 중인 5차 협상에서도 핵심 쟁점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밀고 당기기'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수면 아래선 금융.노동.환경 분과 등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등 '주고받기'식 협상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김 대표에게는 강약을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협상가라는 평판이 항상 따라다닌다. 일본 무사 풍의 외모에서 풍기는 '강인함'만 떠올리기 쉽지만,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인간적 솔직함'과 '끈질긴 설득'이 더 인상적이라 평한다. 인구 1000명의 소 도시 빅스카이의 추운 겨울속에서 다시 만나고 있는 커틀러 대표와도 이제는 "입장은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파트너"라며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됐다는 후문이다.

여론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김 대표의 인간적인 애환도 덩달아 커졌다.

80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살지만 가족들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이다. 가벼운 치매 증세를 보이던 어머니가 청계천에 구경 나갔다가 길을 잃어 몇 시간 만에 상계동 전철에서 발견될 때에도 그는 과천에서 정부대책회의에 몰두하고 있었다.

최근 모 대기업에 입사한 아들이 회사 노조에서 붙인 '반FTA' 현수막에서 아버지를 욕하는 문구를 봤다는 이야기를 입사 소감 대신 전해 왔을 땐 "남몰래 후회도 했다"고 한다.

협상이 다음 정권으로 미뤄진다느니, 대표가 곧 교체된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힘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일이 힘들다고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며 협상 타결 여부를 떠나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다짐했다.

빅스카이(미 몬태나)=홍병기 기자

◆ 김종훈(53)=경북대 사대부고.연세대 경영학과. 외무고시 8회. 주미 대사관 경제참사관, 지역통상국장.샌프란시스코 총영사 등 역임. 패러글라이딩 400회 활강 기록 보유한 만능 스포츠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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