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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거친 삶을 고스란히 견디는 프랑스 연인의 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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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상·하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문학세계사

각 406쪽·408쪽,각 권 1만1000원

비발디와 바흐의 바로크 음악에서 오토바이의 굉음에 이르기까지, 21세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적막을 느낀다. 고전에서 대중문화까지 갖가지 현란한 문화 아이템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이 허전함의 원천은 무엇일까?

도시 젊은이들의 톡톡 튀는 삶을 다뤄온 프랑스 작가 안나 가발다(36)는 젊은 남녀가 오랜 고독과 슬픔과 불운으로 가득 찬 가슴을 비워내고, 그 속에서 사랑을 싹 틔우는 과정을 그리면서 이에 대한 대답을 찾는다.

파리 특급식당의 실력 있는 요리사지만 오토바이와 요리 이야기를 빼고 나면 별로 할 말이 없는 프랑크. 그리고 마실 때는 너무 마시고, 사랑을 할 때는 이성을 잃고, 일을 할 때는 죽자고 하는 화가 지망생 카미유. 어려서의 갈등으로 영혼에 큰 상처가 난 두 사람이 서로 부딪치는 가운데 묘하게 가슴을 채워가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남녀 이야기지만 결코 알콩달콩하지 않다. 달콤한 대목이래 봐야 '어제 가져온 등심살로 만든 거야. 말린 자두와 탈리아텔레 파스타를 곁들였어. 전자레인지에 넣어 3분간 데워 먹어'라는 남자의 메모 정도다.

"일요일에 시골로 돼지 잡는 거 보러 가지 않을래?"라며 여자에게 여행을 제안하는 남자와 "약속을 했으니까 오르가슴을 책임져야지"라는 여자에게서 현재 프랑스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거친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삶의 험하고 우울한 단면이 마구 드러나는 게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게 한다.

그 단면 사이에 요리에서 그림.음악.연극.영화.향수에 이르는 현대 프랑스 문화의 지형도가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생생히 드러난다. 자칫 낯설 수 있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번역자의 충실한 설명이 눈에 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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