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킬러 사마귀로 뒤틀린 세상 저격해 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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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살아간다는 것 경쟁한다는 것

류용 지음, 유소영 옮김

푸른숲, 312쪽, 1만원

얄팍한데다 딱 감성적인 제목의 이 책, 그러나 만만치 않다. 원제가 '살수정전(殺手正傳.킬러 이야기)이라면 짐작이 가리라. 사마귀를 키우는 지은이의 정성은 우습고도 갸륵하며, 담긴 뜻은 날카롭고 묵직한 반면 그 마지막은 애틋하고 처연하다. 왠지 꺼려지는 곤충, 사마귀 한 마리를 소재로 18만자 분량의 이런 이야기를 빚어냈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다.

지은이는 타이완의 화가 겸 작가. 그는 미국에 머물던 1995년 초 정원에서 사마귀를 한 마리 잡는다. 이름을 '페티'라 짓고 먹이를 주는 것은 기본이고 병구완에 만만한 먹이부터 강한 벌레까지 순차적으로 제공하며 킬러 본성을 키우고, 짝을 지워주고 결국은 96년 2월 장례식을 치른다. 이 엉뚱한 작가는 자기 사마귀가 겨울을 넘겨 최초로 신년을 맞았다고 기네스 세계기록박물관에 전화를 걸어 '페티'를 장수 사마귀로 올릴 수 있는지 물어봤다가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하자 이 책을 썼단다.

그러니 일종의 곤충 사육기인 셈인데 이 기발한 작가가 사육과정에서 빚는 해프닝을 천연덕스레 써내려간 글이 여간 재미있지 않다. 사마귀가 허물을 제대로 벗지 못해 집게발을 잘 못 쓰자 '현미경 수술'을 하는 대목이 백미다.

수레바퀴도 겁내지 않고 맞서 당랑권의 뿌리가 된 사마귀의 당당한 모습(그림上)과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의 교미 모습.

10년 전쯤 아들에게 사준 현미경을 찾아내, '환자'를 들어올려 하얀 휴지로 하반신을 감아쥐고는 시술을 하는데 놈이 고분고분 안겨 꼼짝도 않으니 지은이는 특별한 감동을 느낀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윽고 덜 벗겨진 허물을 찾아내고는 안과 전용 핀셋과 파라곤 10호 메스, 뾰족한 작은 가위로 제거작업을 벌이는 지은이의 허풍이라니….

읽는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이런 구절은 어떤가.

"슈퍼 킬러 역시 명의와 마찬가지로 오진과 실패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니 오늘 건강을 되찾은 당신은 의사 이외에도 과거에 그의 수술대 위에서 죽어간 환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이건 어떤가. "공평하다는 말은 승리자의 입에서 나오는 거야. 승리자에게는 불공평한 일도 공평한 일이 되고 패배자에게는 공평한 일도 불공평한 일이 되지…때로는 카드를 쥔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카드를 돌리고 승패도 직접 결정하게 돼. 이게 바로 공평이란 거야."

지은이의 이런 뜻깊은 성찰 혹은 세태에 대한 야유는 끝간 데 없이 오가는 상상력에 힘입어 생기를 얻는다. 근대 중국의 의화단의 난에서 걸프전까지 예로 들고, 노자의 도덕경을 들먹이다가 부락간 전쟁에서 적장을 잡으면 자기 부락의 가장 건강하고 똑똑한 여성을 골라 결혼을 시킨 뒤 아들을 낳으면 그 아버지를 죽인다는 우간다의 얘기도 꺼낸다.

"만물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그 이치를 깨닫는다는 옛말처럼 때로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들어도 온 세상을 들어 올린다"는 기분으로 썼다는 말마따나 잠언집 못지 않게 깊은 이 책, 키득거리며 읽을지 아니면 되새겨가며 읽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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