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요즘 미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것은 성조기다. 슈퍼보울(프로 미식축구리그) 때문이 아니다. 걸프전쟁 이후 미국 사람들은 너도 나도 성조기를 몇개씩 사서 들고 다닌다. TV를 보면서도 그것을 흔든다.
어느 도시의 사진관은 걸프의 미군에게 보내는 가족사진은 무료로 찍어준다는 광고도 붙여놓고 있었다. 수영복 입은 부인의 모습은 더욱 환영한다는 유머와 함께.
미국에선 국회의원 남편이 전시에 예비군으로 소집되면 그동안 부인이 의원직을 승계하는 제도가 있다. 최근 워싱턴 주의회 상원의 한 의원이 예비역 중령의 계급장을 달고 걸프로 갔다. 그 광경을 비추는 TV에서 부인은 눈물 반,웃음 반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도 눈물이 글썽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우리네 소견으로는 국회의원이 해외에 놀러나 간다면 모를까,예비군 소집에 순순히 응했다는 사실부터 미덥지 않다.
그런 미국에는 반전데모도 만만치 않다. 『베트남을 잊었는가』『전쟁은 싫다』는 피킷을 든 사람들의 시위가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며칠전 이라크에 포로로 잡힌 파일럿들의 모습이 TV에 방송되고 나서 사정이 달라졌다.
시애틀의 반전데모 군중들은 그곳 출신의 비행사 제프리 자운 중령이 얼굴에 상처를 입은 참담한 모습으로 이라크의 포로가 되어 TV에 비치자 그날로 걸프전 찬성데모로 돌아섰다.
요즘 미국엔 불편한 일들이 많다. 주차장에 차대는 것도 그렇고,큰 빌딩에 들어갈 때면 몸 수색을 당하기도 한다. 해마다 슈퍼보울은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인기인데 경기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라디오나 도시락 휴대가 금지되었다. 테러위협 때문이라지만 그런 불편에 투정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요즘 걸핏하면 TV에 나와 전황을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 전황이 좋아도,나빠도 비교적 자상하게 얘기한다. 국민들은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박수도 친다.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눈엔 모두가 신기하고 어색하게만 보인다. 일하기 싫어하는 건달들,마약쟁이들이 들끓고 있는 나라가 미국같은데 내면엔 우리의 상상을 절하는 국민의 애국심과 나라에 대한 열정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