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CoverStory] 유행 슬슬 만들어 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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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엄정화 사진=홍장현 ambient09@hotmail.com

나, 아줌마. 드디어 3주 전 레깅스를 샀습니다. 누군가는 "차라리 내복을 빼입고 다니라"고, 또 다른 이는 "(다리)길이도 짧은 동양인이 웬 추태냐"며 비웃던 바로 그 레깅스. 제 생각도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바뀐 계절, 롱부츠가 올 겨울 필수 아이템임을 안 순간 전 무릎을 쳤습니다. "그래, 짧고 굵은 다리는 롱부츠로 가리면 되는 거였어!" 알고 보면 그 레깅스, 저 무척 입고 싶었던 겁니다. 몸매엔 영 자신없는 아줌마까지 내복 비슷한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게 만드는 힘. 유행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이나리 기자

'트렌드 세터' 아시나요

우리 연예계의 대표적 패션 리더 엄정화. 키 훌쩍 크고 한참 어린 신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10년째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 백상예술대상 '패셔니스트상'을 포함해 굵직한 베스트 드레서 상만 다섯 번을 받았다. 그녀는 "늘 새로워지려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유행의 큰 흐름에서 벗어날 순 없다"고 했다. "오늘 차림새만 해도 그래요. 둥근 어깨 실루엣이며 레이스 소재 레깅스는 벌써 지난 봄 컬렉션에서 제안한 내용이거든요." 새해 유행이 예상되는 1960년대 스타일의 H라인 미니스커트까지 깔끔하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대중은 그녀와 같은 트렌드 세터(Trend setter.유행을 만들고 선도하는 사람)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패션 트렌드의 진정한 시작은 소비자입니다. 그들이 속한 시대, 사회 분위기, 경제 상황, 문화적 환경 등이 결국 유행 탄생의 원천이니까요." 삼성패션연구소 서정미 팀장의 말이다. 이런 대중의 욕구를 바로 읽기 위해 패션 종사자들은 복잡한 조사와 분석에 매달린다. 먼저 잡히는 것이 신소재와 색상, 원단 디자인이다. 이를 기본 재료로 삼아,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포진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선 최소 6개월 뒤 트렌드를 제안하는 컬렉션을 준비한다. 시즌이 시작되면 세계 패션 관계자들은 컬렉션이 열리는 뉴욕.파리.밀라노.런던 등지로 해일처럼 몰려간다. '보그 코리아' 이명희 편집장은 "여기서 선뵈는 스타일이 패션 전문지 등 미디어를 통해 밖으로 퍼져나가 1차적 트렌드를 형성한다"고 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연예인·미디어 거쳐 …

유혜경(패션산업) 인천대 교수는 "여전히 글로벌 브랜드가 국내 유명 브랜드로, 다시 대중 브랜드로 순차적 영향을 끼치는 모양새지만 변화도 많다"고 했다. "위성안테나만 있으면 네팔 산골 할머니도 파리 컬렉션을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시대거든요. 인터넷은 더 말할 것도 없죠." 비슷한 맥락에서 스타일리스트들과 연예인의 영향력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명희 편집장은 "요즘의 몇몇 연예인들은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패션 종사자들 못지않다"고 했다. 이들의 앞선 스타일은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나간다. '옥션'의 홍윤희 과장은 "어제 무슨 드라마에서 누가 뭘 입었다 하면 다음날로 거의 같은 디자인이 인터넷 쇼핑몰에 등장하는 세상"이라고 했다. '솔리드 옴므' 우영미 사장은 "패션 브랜드와 연예인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옷을 강동원, 천정명, 조인성 같은 스타들이 많이 입습니다. 물론 홍보에 큰 도움이 되지만 '연예인이라면 누가 입어줘도 좋다'는 식은 아닙니다. 스타일이 서로 맞아야죠. 스타일이 곧 패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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