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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걸프전서 미에 “따돌림”(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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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걸프전쟁과 관련,중국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인구와 경제에서 세계 대국인 중·일 두나라가 세계질서의 커다란 변화와중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는 내막을 주 홍콩·주일 특파원 등을 통해 정리한다.<편집자주>
◎일본의 입장/정보에 “캄캄” 개전시간 늦게 통보받아/“파병검토”등 지원 서둘러
걸프전쟁 발발이후 지난 1주일간 일본 정부 관계자나 일본 언론들이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는 문제는 크게 두가지로 집약된다.
그 첫째는 왜 일본의 각종 정보수집기관이 17일 전쟁개시 시점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는가,둘째는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전쟁개시 정보를 다른 나라보다 늦게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등이며 이는 나아가 혹시 일본이 국제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데서 따돌림을 받는 현상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와 관련,아사히 TV는 지난 20일 아침 보도특집을 통해 걸프전쟁을 분석하는 가운데 몇가지 의문점이 생긴다고 지적,의문점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중동전문가들이 전쟁발발보다 평화적 해결쪽이 더욱 가능성이 높다고 빗나간 예측을 한점이라고 들었다.
전쟁개시 1주일전 베이커­아지즈 미­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이 결렬되고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의 최후조정이 실패로 끝난 직후 세계 전체가 「전쟁불가피론」으로 기울었을때도 일본내 정·관·재계,매스컴,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는 『사담 후세인이 최후에는 양보할 것』『부시 대통령은 전쟁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했던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방위청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미국이 일본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정보관리에 불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그의 판단으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사태 이후 일본 정부가 기대한 만큼의 공헌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미국측의 대일본 견제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두번째 의문인 미국이 왜 일본 정부에는 전쟁발발의 D데이 H아워를 작전개시 30분전에야 알렸는가 하는 문제도 결국 「미일간의 보이지 않는 암투」를 증명하는 것으로 일부에서는 인식되고 있다.
한 주간지(주간포스트 2월1일자)는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저간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무라타(촌전) 주미대사가 백악관으로부터 이라크 공격사실을 전달받은 것은 뉴욕 현지시간 오후 6시30분(한국시간 17일 오전 8시30분)이라고 지적,이는 공격에 참가한 다국적군 참가 각국은 물론 이스라엘보다 늦은 시점이며 제1보를 보도한 ABC­TV도 부시 대통령을 지원한 그때까지의 논조가 평가받아 사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자위대기 파견얘기가 자민당내 매파사이에서 거론되기 시작했고 가이후(해부) 총리도 엉겁결에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긴급대책의 하나로 서둘러 발표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본내 자위대 파병논의의 주요한 구실중 하나가 미국으로부터의 「압력」때문이라는 「외압론」이 성립하는 셈이지만 문제는 일본이 경제대국이면서 정치소국으로 머물러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잠재적 분출욕구를 미국 지도층이 끊임없이 일본에 일깨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미국 군부내 매파를 대변하는 한 해군제독의 발언은 일본 매스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7일 낮 동경 외신기자클럽에서 전태평양함대 사령관 제임스 라이언스 해군제독은 다짜고짜 이번 중동 걸프전쟁에서 『일본은 깃발을 보여라(쑈 더 플래그)』고 요구한 것이다.
그는 일본이 한국전쟁때 소해정을 파견한 사실까지 들먹이며 일본이 돈을 내는 것도 고마운 일이나 이보다는 전쟁물자 수송이나 소해정·의료진 파견,나아가서는 스패로·사이드 와인더같은 방위용 미사일의 제공까지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국전과 베트남전을 모두 취재했다는 한 백발의 프랑스 원로기자는 기자회견이 끝나자 조용한 목소리로 『전쟁은 누구나 예측하면서도 막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경험을 되뇌면서 『아마도 미국의 한국군 전투부대 파견요청을 한국 정부가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의미있는 말을 던졌다.<동경=방인철특파원>
◎중국의 입장/「양비론」 기회주의로 비쳐/신 국제질서 동참거부등 관계 껄끄러워
지난해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걸프사태는 중국에 있어 하나의 희소식이었다. 천안문 유혈진압으로 국제사회에서 악역을 감수해야만 했던 중국을 대신해 후세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 이라크 무력응징안에 기권하는등 중국은 타협적 자세를 취하면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이용,외교적 열세를 뒤집고 국제사회에서 비중을 되찾는 듯이 보였다.
이 무렵 중국의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미·소·유럽·일과 더불어 중국이 5극 구조로 구성되는 미래의 국제 신질서를 주도할 세력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걸프사태에 대해 무력에 의한 해결방식을 택하면서 미중 관계개선은 지극히 제한적이고도 취약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미국은 무력개입을 결정하면서 핫라인을 통해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밀접하게 연결을 유지하면서 케야르 유엔사무총장 및 서구 주요국가들에 사전 통고했으나 중국 지도자는 그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의 걸프사태에 대한 기본입장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불법이므로 무조건 철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무력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되며 정치·외교적 방법에 의존해야 한다는 「양비론」으로 요약된다.
중공당 이론지 『구시』 최신호에 실린 첸치천(전기침) 외교부장의 국제정세 및 중국 외교노선에 관한 글은 이같은 중국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라크­쿠웨이트 모두 제3세계에 속하는 만큼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이해관계란 없다』는 것이 중국측 평화안의 한 근거인 동시에 냉전시대의 국제질서를 특징지웠던 힘의 논리는 국제관계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있는 현 단계에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중국의 이같은 태도는 이라크나 미국의 어느 편으로부터도 평가나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사태해결보다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냉전시대 이후의 국제질서 형성에 전환점이 될 최근 사태와 관련해 중국이 사실상 소외되고 있는 이유로 몇가지점을 우선 들 수 있겠다.
첫째,대서방 관계에서 신뢰를 쌓은 지도자가 지금 중국에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고르바초프를 동반자로 간주하면서도 과거 저우언라이(주은래)나 초기 덩샤오핑(등소평)에게 보이던 정중함이나 호의는 전혀 비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둘째,중국 자신이 탈냉전·탈사회주의를 좌표축으로 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변화속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점이다.
안으로 경직된 사회주의체제·사상을 고수하면서 밖으로는 패권주의에 대한 종래의 시각을 청산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동서 협력의 논리가 부족하며 자본주의국가와 사회주의국가간의 평화적 방식에 의한 변화추구조차 체제전복적인 것으로 배척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셋째,중국 역시 민족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한족 다음으로 많은 5천만명의 이슬람계 소수민족들이 걸프사태로 자극받게 되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중국 당국으로서는 꺼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넷째,중국의 2중적인 외교정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지난해 대 이라크 무기수출을 급격히 늘렸다. 당시 이라크가 무슨 일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관계분야 전문가들 사이에 나돌고 있을 무렵이었다.
또 망명 쿠웨이트 정부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으면서 루마니아의 사회주의 정권에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무역대표부 교환으로 준국교관계를 맺은 중국이 남북한에 대해서도 허스라오(화사료·중개인)식으로 대처해갈 가능성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홍콩=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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