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7·11 전당대회 대리전서 쓴잔이 '전화위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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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전 맞다. 박근혜 대표를 위해 나를 버렸다. 앞으로도 버릴 생각이다. "(강재섭 대표)

"대리전이 아니다. 나를 (이명박 전 서울시장)대리인이라고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수모다. "(이재오 최고위원)

7월 11일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나온 발언들이다. 당시 최대 쟁점은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대리전'이었다. 결과는 박 전 대표 측의 지원을 받은 강 대표가 '중립 선거'를 주장한 이 최고위원을 물리쳤다. 박 전 대표 측은 승리를 자축했고 이 전 시장 쪽은 침통했다. 그러나 5개월 만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박 전 대표의 대리전을 자청했던 강 대표는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철저한 중립'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은 이 전 시장 캠프의 '국회 본부장'으로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이 당내 기반을 강화하고 박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를 벌리는 데 이 최고위원의 역할이 크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 쪽에서는 "전당대회에 개입한 게 실수 아니냐"는 '패착론'이 제기된다.

반대 진영에선 이 전 시장이 전당대회 직후 부인 김윤옥 여사와의 통화에서 "괜찮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한 말이 새삼 주목받는다.

◆ '중립' 강조 강재섭, 캠프 핵심 이재오=강 대표는 당선 직후 "호루라기를 잘 부는 공정한 심판형 대표가 되겠다"며 중립을 표방했다. 9월에는 이 전 시장도 만났다. 박재완 대표 비서실장은 "당이 분열되면 '전쟁'(대선)에 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강 대표는 끝까지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 캠프 측은 "실제로 강 대표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강 대표가 도우려 해도 이 전 시장 쪽의 견제 때문에 꼼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 최고위원은 이 전 시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 이 최고위원과 가까운 인사는 "박 전 대표 쪽이 대리전에 나섰기 때문에 이 최고위원이 아무런 심적 부담 없이 이 전 시장을 도울 수 있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은 원내외 인사들로 접촉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의원들의 전략회의도 주재한다고 한다. 박 전 대표 캠프 관계자는 "이 최고위원이 조직을 파고드는 게 상당한 위력이 있다"고 염려했다.

◆ 전당대회 전략 실패?=그러다 보니 박 전 대표 진영에선 결국 전당대회 전략이 실패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한 의원은 "당시 이 최고위원이 당 대표가 되도록 해 발을 묶어두는 게 낫다는 견해가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옳았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다른 의원은 "이 최고위원이 당 대표가 됐다면 경선 방식 등 더 많은 분야에 편파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시장 쪽에선 여전히 강 대표를 경계한다. 한 의원은 "강 대표가 중립을 표방하지만 은근히 박 전 대표 쪽을 두둔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선이 다가올수록 노골적으로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강주안.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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