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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추격 뿌리친 「고객주의」|복사기 메이커 미제록스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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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의 동북부 뉴욕주 웹스터시의 제록스사에 들어서면 1백30만평에 이르는 방대한 공장규모와 함께 공장입구에걸린 플래가드가 먼저 눈에뛴다.
「볼드리지상의 수상음 기녑하며 고객·부품협력업체·정부에 감사한다」는 내용이다. 볼드리지상은 미국정부가 민간기업에 주는 전국품질관리대상으로 전상무장관이었던 맬컴 볼드리지의 이름을 따88년부터 체점한 것으로 89년 제록스사가 섬유회사인 밀리켄사와 함께 2회 수상자로 뽑혔다.
세계적인 복사기 메이커가 어떻게 보면 대수롭지 않을 수상하나를 놓고 이처럼 영예롭게 생각하는데는 제록스의 10년이 넘는 각고와 노력이 그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지난 80년대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특히 경제면에서 우울한 시대였다. 무섭게 뻗어가는 일본과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독일경제의·강건함 앞에 미국의 위상은 흔들려갔고 이에따라 세계제일의 지위를 누려오던 미국의 「명기업·명품낱장 그 격가를 차츰 잃어갔다.
미국의 창의성 산물이라는 반도체·컴퓨터는 말할 것없이 복사기 산업도 외국의 도전에위협 방기는 예외일 수 없었다.
일본의 리코·캐논등 새로운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제록스가 석권하고 있던 전세계 일반복사기 시장의 점유율은 74년 86%에서 84년엔 16·6%로 떨어지는 극심한 침체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제록스는 일본의 도전에 강력한 품질향상으로 대응, 80년대 말에는 잠식당한 미국시장에시의 점유율을 되찾는데 성공, 현재는 재탈환을 이룩한 몇 안되는 미국기업으로 꼽히고있다.
제록스가 볼드리지상의 수상을 남달리 받아들이는 까닭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오늘날 열명중 일곱명의 미국인이 복사하면 「제록스」란 단어를 일반명사처럼 시용하고있다. 여기에서도 나타나듯이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록스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시도 상대가 없었다.
제록스는 지난 l906년 로체스터시에서 종업원 l2명의 사진인화지 메이커로 출발했다. 제록스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개인발명품인 건식복사 특허를 사들여 48년「제록스모델 A」59년 「제록스914」 등 혁신적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부터다.
이후 제록스는 53년부터 세계시장에 진출, 영국의 랭크제록스, 일본의 후지필름과 후지제록스등 합작회사를 설립하면서 세계전역에 30여개시사를 거느리는 다국적 OA(사무자동화) 메이커로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와 상황은 달라져 IBM과 코닥이 잇따라 븍사기 시장에 참여를시작,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다. 이와함께 일본기업들은 제록스가 고급복사기 시장을 둘러싸고 국내기업과 경쟁을 벌이는 동안 품질과 값싼 제품을 앞세워 미국의 저급복사기 시장을 침투해 들어왔다.
이미 70년대 중반 해외지사로부터 저급복사기가 캐논·리코등 일본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는 위험신호가 들어오고 있었으나 제록스 경영층은 70년대내내 이를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제록스는 이익이 적은 저가격 기종에 손을Ep고 대형 고급기종에 주력했다. 어차피 이익이 낮은 시장에서 일본과 힘겹게 싸우느니 차라리 이윤높은 시장만 확고히 다져놓자는 미국기업 특유의 이익 중시 경영관리에 주력한 것이다.
그러나 제록스가 사태의 심각성에 눈을 뜬 것은 79년에 가서야었다. 저급복사기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일본기업들이 이를 토대로 계속 기술개발을 거듭, 고급기종에서까지 저가격제품생산에 성공, 시장을 잠식해 왔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제록스 경영층은 일본기업들의 도전을 인식하고 회사운영 개신을 위한 경영수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난 83년 버지니아주 리즈버그시에 미국내 25명의 핵심경영층이 6개월동안 회합끝에 전사적인 품질관리운동인「질을 통한 리더십」(Leadership Through Quality)프로그램을 84년부터 도입했다.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3년간 고용을 보장하고 부품 납품업자도 5천여개사에서 4백지개사로 대폭 줄여 제품의 품질균일화를 도모해 나갔다.
또 고객중시의 경영목표를 새로 세우고 이 프로그램에따라 전세계에 있는 10만명의 제록스직원 가운데 7만명이 3년에 걸쳐 재훈련을 받는 강행군이 진행 되었다.
제록스 로체스터본부의 홍보담당자 주커만씨는 『품질관리운동의 도입 초기엔 회사작업체계가 권위주의적으로 불만도 적지 않았다』며 『특히 직장·조장들의 반발이 커 회사측은 작업환경을 자발적인 민주화로 고치든지 그렇지 못하면 나가라고 맞섰다』며 새로운 경영개선방번 도입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제록스의 이같은 재생작전은 일본의 도전을 일본식 경영방법을 원용, 극복했다는 데서 의미를 갖고 있다.
미국의 기업들은 세계최고의 위치를 오랫동안 누려온길과 경쟁과 효율성면에시 상당한 약점을 지녀온게 사실이다. 제록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복사기술 특허로 독점적 성장을 해온 까닭에 생산비를 줄이고 질을 높이며 고객의 요구를 따르려는 자극을 느끼지 못했다. 생산과정에 결점도 커 제록스 디자인은 부품을 더 많이 필요로 했으며 제품검사도 공정라인 의에서가 아니라 생산이 끝난뒤 불량품을 골라내는 방법에 의존했다. 불량품을 찾아내 없애는게 아니라 이미 많은 불량품이 생산된 뒤에 이를 찾아내는 식니 효율은 낮아질 수밖에없는 것이다.
제록스는 품질관리 운동을 시작하기 전이었던 지난 79년 일본 경쟁기업들을 분석하기 위해 연구대표단을 파견했다. 조사결과 일본의 제품판매가는 제록스의 공장도가격 수준밖에 안되며 질은 더 우수했다.
이때부터 제록스는 일본경영방식의 연구를 시작, 중요 중간급 직원들을 후지제록스에 연수, 일본기업이 왜 강한가를 깨닫게 했다. 직원들 스스로의 자각이 중요하다고 여긴것은 물론 일본기업과 연합 함으로써 ,말하자면 이이제이의 방법을 사용, 명품의 생존을 재확인해 간 셈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달라진 제록스가 품질관리 못지않게 신경을 집중하는 부문으로는 마케팅도 빼 놓을 수없다.
『보통 마케팅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일즈를 연상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케팅 목적은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을 떠나 고객이 필요로 하는 모든것을 제공하고, 그것을 세계적으로 차이없이 일관성있게 서비스 한다는데 있다』고 재테그맨 국제마케팅 담당임원은 말했다.
이에띠라 중역진의 새로운 마케팅 프로그램을 마련, 해외지사마다 한달 간격으로 고객의 요구를 점검하고 미국본부의 경영층이 각국을 순회,고객을 직접 면담해 상의하는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특히 제록스가 이 과정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고객우선주의. 재크맨씨는 『제록스가 고급사무용기증에만 주력, 개인복사기시장에 문제를 가져온것도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마케팅에 신경을 덜 썼기 때문』이라며 『고객 만족주의가 경영에 가장 우선』이라고 말했다.
제록스에는 이에따라 회장을 비롯한 경영층들이 한달에 하루를 고객의「전화받는 날」로 정해 고객의 상담에 응하고 있다.
컨스회장도이에참여『부인에게개인복사기를 사줬더니 설치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한 남편고객의 전화를 받고 이를 회수해 사과전화와 함께 크리스마스날 꽃을 보낸일도 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보기 힘들었던 「고객지향주의」로의 변신인 것이다.
10년여의 각고끝에 미국복사기시장에 대한 일본의 침투는 주츰 거리고 있으며 제록스도 잃었던 시장의 상당부분을 되찾는데 성공하고 있다.
미국의 일류기업들의 강점이 연구개발에 있듯이 제록스가 쏟는 R&D노력도 각별하다.
.팔로앝토 리서치센터등 미국·캐나다·영국에 걸쳐 4개 주요연구소를 두고 있으며 합작회사인 후지제록스를 제외하고도 8천여명이 이에 종사, 이 가운데 약 1천명이 연구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연구개발 투자도 매출액 대비6∼7%로 80년이후 줄곧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복사기메이커인 제록스의 앞길에 성공만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복사기는 90년대에 들어 새로운 기술혁신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단순한 복사기에서팩시밀리 전송과 더불어 컴퓨터화면의 인쇄까지 하나로 묶는 복합기능복사기의 출현이 예고되고 있으며, 복사기술도 레이저화로 발전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원본재생력이 뛰어난 컬러화에 복사속도도 급속히 빨라져가고 있다.
명품의 가치는 끊임없는 도전을 물려칠 능력이 있는 기업만이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이같이 제록스가 당면한 새로운 경쟁에서도 다시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글 장성효기자 사진 조용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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