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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념성 퇴조·자아복권 도드라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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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해도 여느 해 처럼 주요신문들은 신춘문예를 통해 젊은 시인들을 문단으로 내보냈다. 새해와 함께 떠오른 이들 신인들에게 쏟아지는 축하의 다발들은 그들 앞으로의 할약이 우리 시의 힘찬 활력이 되어 주길 바라는 문단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올해의 부선시들로부터 딱히 그 일반적 특징을 찾아내 요약하기 어렵다. 다만 한두작품을 제외하고는 당선시 들엔 흔히 「신춘 문예풍」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도식화된 기법들이 상당히 가셔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당연한 결과로서 거기엔 묘현의 참신함이 돋보이는 시구들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등이 올해의 당선시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반가운 현상이랄까. 가령 당돌할 정도의 감각과 패기를 보여주는 시구인 『바늘을 한 뭄큼 삼킨,목까지 잠기는 시커먼 스모그의 급류속으로 나눈 떠 내려간다.(……)다리가 퇴화한 파충류처럼 얇은 뱃가죽을 문지르며 기고 있는 사람이있다. 어디서 잃었을까?(……)그러나 그의 하체에는 생명만큼 질긴 고무타이어가 새 살로 돋았다』(『조선일보』「오늘 서울에서 샅아남은 사람은 ? 」)라든가, 『페인트로 밝혀져 있는 공장담벼락 희망이 무지개처럼 솟고 상식이 모래알처럼 깔린 신작로를 따라 긴 긴 머리 검은연기처럼 날려면서 가고 있을 공녀야』(『경향신문』「황야의 정거장」처럽 생소하면서도 신선한 표현의 시구등이그 좋은 예다. 이러한 신선하고도 활달한 감각의 시구들은 젊은 신인들의 시적 재질을 보증해주는 것이고 그들에게 거는 시단의 기대에값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여기서 지적해두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미지구사와 시걱표현의 돋보임이 주제의식의 치열함과 서로 조화롭지 못한채 서로 겉도는 예를 우리는 과거의 신춘시에서 비일비재로 보아왔다는 점이다. 올해의 당선시들 가운데 몇편은 이미지와 기교의 조율과 공마에 힘을 소진한 나머지 삶을 응시하는 안목의 부재를 노출하고 있다. 이때 시는 차가운 수사학의 차원에 머물뿐이다. 이또한 신춘시가 오랫동안 보여주었던 하나의 몌습이다.
올해의 당선시들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념성·집단성의 퇴조와 자아의 목권이 도드라진 분외기다. 서정성과 이야기성을 따스한 시세계로 엮고 있는 박윤규의 『슬픈바퀴 』(세계일보) 와 전통적 서정주의에 입각하고있는 장대송의『초분』(동아일보), 함명 촌의 『할엽 수림 』(서울신문)등은 세계와 자유로이 교감하는 자아의 낭만적인 내면공간을 그려내고 었다. 지난 수년간 한국시가 뜨겁게 겪었던 이념시·민중시 열풍의 뒤끝에서 이러한전톰적 기법을 바탕으로한 자아중심의 작품들이 신춘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어떤 시사적 기교를 나타내는 것인가를 한번쯤 살펴볼 일이다. 그러한 시들의 존재는 이념의 퇴색을 재촉하는 현실의 반영인가, 또는 단순히 신춘문예 심사과정의 보수적 메커니즘 탓인가.
올해의 당선시를 가운데 이념에대한 고뇌의 모슴도,이렇다 할 시적 기교도 보여주고 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인생론적 주체의식을 밀고나간 작품이『우리가 매다는 장식은』(중앙일보)이다. 이 작품은 산뜻한 이미지와 날렵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진 못하나 욕망이 비등하는 시대에 욕망에 집착하는 삶은 헛된 삶일 수밖에 없다는, 욕망에 대한 자기성찰을 진지하게 이끌어 내고있다. 그리고 그 성찰은 시인의 인생론적 바탕에로 보태어 진다. 이 시가 지니고있는 표현상의 거침과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시적 환기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그와같이 이 시가인생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건대 올해의 당선시들도 예년의 신춘시들이 보여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그 원인은 여러 방면에서 살펴질 수 있겠는데 그 가운데하나는 젊은「예비시인」들이기교의 추구에 치우친 나머지 삶의 진실 추구에 등한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임우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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