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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걱정스러운 일본의 교육법 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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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45년 패전 뒤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에서는 보수.우익세력이 오랜 세월 추진해 온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전후 일본 교육을 이끌어 온 교육기본법도 4월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며, 지난달 15일 중의원에서 가결돼 현재 참의원에서 심의하고 있다.

패전으로 군주제만 남았을 뿐 군대는 해체됐고, 군국주의의 정신적 기반이던 메이지(明治) 일왕의 '교육칙어(敎育勅語)'도 사라졌다. 군국주의를 지탱해온 강력한 두 개의 '호송선단', 즉 군대와 교육이 배제된 것이다. 곧이어 전쟁 포기를 서약하는 평화헌법과 그 정신을 실현하고 '개인의 존엄'이라는 민주의식을 전면 반영한 교육시책 원칙인 교육기본법이 공포됐다.

그 뒤 일본의 보수정권은 인류 평화에 대한 염원은 외면한 채 기사회생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드디어 찾아온 기회가 50년 한국전쟁이다. '전력 없는 군대'(지금의 자위대)가 하루아침에 되살아났다. 동시에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육기본법 개정이 추진됐다.

전후 결성된 일본의 노동조합과 진보언론.시민단체들은 정부의 교육개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이 우려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개정안대로 가결될 경우 학교 현장에서 '국가주의 교육'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교육위원 공선제 폐지, 교사의 근무평가, 전국 동시 학력조사 외에 문제가 되는 '애국심 조항' 등이 포함돼 법적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기본법 개정은 전후 보수정권이 추진해온 헌법 개정을 위한 돌파구의 성격을 갖는다. 교육기본법 개정은 평화헌법의 혼을 빼내는 작업이다. 그러나 정부는 "교육법은 지금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제는 국회의원 과반수가 이를 지지한다는 점이다.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두 가지 점에서 현행 교육기본법의 발상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첫째, 개정안은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와 '공공의 정신' '도덕심 배양'과 같은 국민교육 조항들을 추가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이념을 뛰어넘어 법의 변질로 이어진다. 이 조항에 맞춰 관련 법규나 학습지도 요령이 개정될 경우 학교 교육에서 민주의식 함양과 인권, 개인의 존엄에 대한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국가주의 및 배타주의를 심는 쪽으로 경도될 수 있다. 이는 교육기본법의 성격을 왜곡시킬 수 있으며, 여기에 추가되는 새로운 이념들은 위헌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현행 교육기본법의 핵심인 10조를 전면 개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조항은 '교육을 받을 국민의 권리=모든 사람의 학습권'이란 점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 행정은 '필요한 조건들을 정비.확립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교육은 부당한 지배에 복종하지 않고, 국민 전체에게 직접 책임을 지고 시행돼야 한다"는 현행 조문을 삭제하며, 따라서 교육기관은 국가가 정하는 법률에 따라 교육하게 된다. 학생과 교사의 자율권이 줄어들고 상의하달, 즉 법에 의한 획일적인 통제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이번 개정안은 85년 유네스코가 기본적 인권으로 규정한 '학습권'도 보장하지 않고 있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여러 논란 속에 일본 국민은 학습권을 기축으로 하는 교육방식을 자각하게 됐고, 이런 의식이 서서히 일본 사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본적 인권과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가치는 인근 국가들과의 끈끈한 유대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이는 곧 일본이 과거 아시아 이웃들에게 자행한 과오에 대한 반성이자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오타 다카시 도쿄대 명예교수전 일본교육학회장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