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이야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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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상의 모든 장애자들이 고대하는 반가운 메시지가 있다면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물이나,감상,어색한 미소가 아니다.
그들은 비록 신체는 불구자지만 심장과 머리마저 불구자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꾸밈없이 인정받고 싶어한다. 정신박약자까지도 그의 의식,그의 마음,그의 정신,가장 깊은 곳엔 따뜻한 감정과 차가운 이성을 간직하고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바로 그 진실을 요즘 서울에서 상영되고 있는 한편의 영화에서 감동있게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아일랜드 작가 크리스티 브라운의 자전적소설 『나의 왼발』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브라운은 태어날 때부터 심한 뇌성마비로 전신이 부자유스러웠다. 그러나 천행으로 그의 왼발엔 실낱같은 의식의 한가닥이 남아있었다. 브라운은 여기에 기대어 그림도 그리고 소설가와 시인까지 되었다.
벽돌공의 가난한 집안,적지도 않은 22명의 자녀들속에 끼여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생활하며 겪는 정신적,물질적 고통과 좌절은 어떻게 보면 구질구질한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동은 그런 외면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얘기가 아니라,브라운의 밝고 건강하며 인간적인 내면을 조명하는데 있다.
이런 장면도 있었다. 어느날 브라운은 외발가락에 분필을 끼고 마루바닥에 「어머니」라는 글씨를 써보인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깊은 곳에 묻혀있었던 귀중한 의식과 따뜻한 마음을 주위 가족들에게 증명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브라운은 그 발가락으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낼 카드 그림도 그린다.
연극배우 출신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그가 정말 장애자가 아닌가 할 정도의 신기에 가까운 연기로 브라운의 모든것을 재연하고 있다.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다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어머니의 역할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어머니의 힘이 얼마나 강인하고 초인간적인가를 브라운의 어머니역을 맡은 브렌다 프리커는 모든 어머니를 대신해 보여주고 있다.
바로 지난해 아카데미 영화상은 이들 두 사람에게 각각 남우 주연상과 여우 조연상을 주어 다시금 세계의 갈채를 받게했다. 요즘과 같이 음산하고 침울한 겨울날에 모처럼 느끼는 진솔한 감동은 더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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