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선 「페만 평화해결」 전망/「D­8일」… 프랑스의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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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라크 15일까진 철수뜻 표명할 것/EC 협상안에 소 중재로 타결 모색
유엔이 못박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이 여드레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그날까지 이라크가 철수하지는 않더라도 철수의사를 분명히 할 가능성은 있다는 전망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강하게 일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프랑스의 롤랑 뒤마 외무장관에 의해 처음 공식화됐는데 그는 지난 4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EC(유럽공동체) 회원국 외무장관회담에서 『만일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오는 15일까지 분명하게 밝힐 경우 이를 무시하고 무력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전망을 바탕으로 그는 이날 회담에서 7개항으로 된 EC차원의 대 이라크 협상안을 제시해 큰 관심을 모았는데 물론 그 첫째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 철수의사를 오는 15일까지 공식 발표한다는 것이다.
이어 이 협상안은 일단 이라크가 철수의사를 공식발표하면 외국군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제2항으로 하고 있으며,이라크가 정해진 일정에 따라 철수를 완료하고나면 일련의 국제회의를 통해 중동의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제3항에서 밝히고 있다.
이 협상안이 이날 회담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진건 아니지만 오는 9일과 10일로 각각 예정된 미­이라크,EC­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을 앞두고 이라크의 자세변화와 이에 따른 마지막 타협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협상안은 크게 주목되고 있다.
페르시아만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마지막 기회로 일컬어지고 있는 오는 9일의 베이커(미 국무장관)­아지즈(이라크 외무장관) 회담을 앞두고 미국은 15일까지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무조건 철수하지 않는한 어떠한 타협과 협상의 가능성도 없다는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는 9일 회담에서 베이커 장관이 이같은 미국측의 공식입장을 그대로 고수할 경우 타결의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관측이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일단 뽑은 칼을 다시 집어넣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명분이 사담 후세인으로서는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유럽이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점으로 오는 15일의 철수시한을 앞두고 EC가 미국과는 달리 이라크측에 철수명분을 제공하는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다.
이라크와의 특수한 관계를 바탕으로 대 이라크 협상의 주도권 장악을 은연중 모색하고 있는 프랑스가 이라크와의 타협노력에 가장 적극적이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작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중동평화회담을 처음 제의함으로써 후세인 대통령에게 철수명분을 주는데 앞장섰다. 프랑스의 이러한 유화책은 미국의 강경책과 적잖은 마찰을 빚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프랑스는 다각적인 통로를 통해 사실상의 독자적인 외교노력을 계속해왔다.
가장 최근의 예가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이라크를 방문,아지즈 장관 및 후세인 대통령과 면담을 가진 미셸 보젤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으로 프랑스 정부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개인차원의 방문이라고 엘리제궁은 애써 강조하고 있지만 그가 미테랑 대통령과 매우 절친한 사이라는 점을 고려할때 사실상의 특사자격으로 이라크를 방문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보젤 위원장의 이라크 방문과 뒤마 장관이 지난 4일 제시한 대 이라크협상 7개항 사이에는 모종의 연관관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곳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즉 후세인 대통령과 보젤 위원장의 면담에서 15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는 않지만 철수의사를 공표할 용의는 있다는 점이 확인됐고,이의 구체적 실현을 보장키 위해 프랑스가 제시한 것이 대 이라크협상 7개항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현재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평화의 시나리오가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즉 오는 9일과 10일의 대 이라크 마지막 협상은 뚜렷한 성과없이 끝나 전쟁의 위기가 일단은 고조되지만 오는 15일의 철수시한이 끝나기 직전에 이라크가 ▲대 이라크 무력사용 배제 ▲중동배치 외국군 철수 ▲중동문제의 총체적 해결 등의 조건과 함께 쿠웨이트 철수계획을 일방적으로 공식 발표한다는 것.
이어 프랑스등 유럽의 비둘기파 국가들은 이라크의 발표를 새로운 상황전개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유엔안보리의 즉각 소집을 요구하게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는 미국·영국을 중심으로한 매파 국가들과 비둘기파 국가들간의 격론이 벌어지지만 소련의 중재로 결국 페르시아만 사태는 평화적 해결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게 이 시나리오의 골자.<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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