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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 부녀자 추행”/일,악성루머로 법석(지구촌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사이타마현서 인근 지방 확산/“사실무근”안믿어 외국인 곤욕
외국인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일본 사이타마(기옥)현 동남부에 『외국인이 부녀자를 추행한다』는 근거없는 악성유언비어가 잇따라 외국인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올 여름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천구)시내에서는 시민들 사이에 『40세전후의 부인이 새벽 4시에 개를 데리고 산책나갔다가 정체불명의 흑인에게 추행당해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자살했다』는 내용의 소문이 급속도로 퍼졌다.
이러한 소문은 인접 시에까지 퍼져나갔고 사이타마현 동남부 소가(초가)시·와라비(궐)시 등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긴장한 사이타마현 경찰당국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 특별수사반을 편성,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이렇다할 증거가 없는데다 그때까지 단 한건의 신고도 없어 단순한 악성유언비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시민들은 대부분 소문을 사실로 믿고 있으며 유사한 소문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있는 실정이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전되자 경찰은 학교와 방송 등을 통해 단순한 유언비어임을 알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일본인들의 근거없는 의심탓에 이 부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일상생활에까지 적지않은 불편을 겪고 있다.
일본 사회에 이런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23년 관동대지진이 있은 직후 재일 한국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아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닥치는대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당시 대지진으로 일본사회 전체가 마비상태에 빠졌을 때 일본군부는 국민의 불만을 재일 한국인에게 돌리도록 획책한 것이다.
이번 경우도 일본의 인력난을 틈탄 「외국인 노동자의 급증」이라는 사회적 변화가 그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유언비어의 「진원지」인 가와구치시만 하더라도 금년 6월말현재 외국인등록자수는 5천2백86명으로 5년전에 비해 2배이상 늘어났다.
가와모토(천본) 고마자와(구택)대교수(매스컴사회학)는 이러한 유언비어의 근저엔 『일본인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밖에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비해 이를 거를만한 여과장치가 부족한 현실도 유언비어 형성의 이유로 들고있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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