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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곤충 테크놀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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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보풀처럼 가벼우면서도 강철보다 단단하고 나일론보다 질긴 소재가 있다면? 정답은 거미줄이다. 굵기가 머리카락의 10분의 1 정도인 거미줄을 뭉치면 그 강도가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다섯 배 강하다. 하지만 5200년 전부터 실크를 만드는 데 사용된 누에와 달리 거미는 인류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일생 동안 뽑아내는 거미줄의 양도 적거니와 함께 있으면 서로 잡아먹는 습성이 있어 사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인공 거미줄이 머잖아 실용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몇 해 전 캐나다의 한 벤처기업은 거미줄에 관련된 유전자를 염소의 젖샘에 이식한 뒤 염소 젖에서 거미줄 원료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100여 가지 병균을 옮기는 바퀴벌레는 가정에선 박멸의 대상이다. 하지만 로봇 공학자들에겐 배우고 따라야 할 본보기다. 여섯 개의 다리로 빠르면서도 안정적으로 달리는 능력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미국 연구진이 바퀴벌레의 해부학적 구조를 응용해 만든 로봇은 1초에 몸길이의 50배에 해당하는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이 소형 다족(多足) 로봇에 원격 제어 칩을 탑재하면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공간에 투입할 수 있고 군사용 정찰용으로 쓸 수도 있다.

곤충의 능력을 활용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곤충 테크놀로지'라 부른다. 곤충은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없는 물질을 만들거나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감각과 기능을 갖고 있다. 지구상에 100만 종 이상 존재하는 곤충이야말로 인류의 손이 아직 미치지 못한 최대의 자원이라고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지난주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국립 연구소가 후각이 발달한 꿀벌을 훈련시켜 폭발물 탐지에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미군은 이미 이라크전에서 꿀벌을 이용해 지뢰나 폭탄을 찾아내는 실전 훈련을 하기도 했다. 곤충산업에 일찍 눈을 뜬 일본은 금색.녹색 등 일곱 가지 화려한 빛을 내는 비단벌레의 발색(發色) 구조를 자동차 등 금속재료에 재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염료나 도료 없이 색깔을 낼 수 있으니 환경친화적 기술로는 딱이다.

한국의 곤충산업은 식용.애완용 곤충 사육과 유기농업 활용, 또는 나비축제.반딧불 축제 등 관광산업이 대표적이다. 이젠 한걸음 더 나아가 첨단 과학과 접목된 곤충 테크놀로지에도 눈을 돌려 봤으면 한다. 일찍이 신라시대에 비단벌레 날개의 화려한 광택을 말안장 장식에 활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있었으니 우리라고 못할 건 없다는 생각이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