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0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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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꼭 10년이 남았다. 먼 훗날같지만 요즘의 시간감각으로는 10년도 잠깐이다. 21세기는 이제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다.
시간의 연속으로 보면 새로운 세기라고 무슨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시간은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날만 바뀌어도 신선한 기분을 갖는다. 하물며 해가 바뀌는 경우는 더 말할 것 없다.
우리는 지금 그 1년도 아니고 한세기가 물러가는 마지막 10년의 첫해를 맞고있다. 그 10년이 지나면 새로운 세기다. 그러나 그 세기는 우리가 역사상 경험했던 세기와는 전연 다른 문명과 문화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오늘의 전자문명과 새로운 정치문화들은 그런 새싹들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컴퓨터라는 것은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문명의 첨병이다. 지난 한 세기를 두고 인류를 괴롭혀온 공산주의나 독재정치는 도서관의 깊은 선반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런 문명의 시계앞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엊그제의 그 음산하고 무기력하고 비생산적인 정치풍토는 다시 얘기를 꺼내기도 곤혹스럽고 역겹다. 지금의 그 낭비적이고 목표도,꿈도 없는 경제정책들과 무수한 시행착오들을 되새겨 보는 것은 시간이 아깝다. 오늘,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위협하는 흉악한 일들도 상상조차 하기 싫다.
우리는 이순간 그 모든 것들을 딛고 일어서서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장 우리는 지방자치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것은 과거에 있던 선거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21세기를 주도할 정치일꾼을 뽑아야 한다. 이들은 얼굴도,생각도,말도,행동도 정상배들과는 달라야 한다. 똑같은 정상배를 뽑는 것은 과거의 반복일 뿐이다.
경제도 그래야 한다. 이제는 이상과 꿈이 있는 경제를 펼쳐야 한다. 그것은 철학도,의지도,추진력도,사명감도 없어보이는 관료들에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과 기업인들의 저력과 결단,창의력이 솟구쳐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도덕의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정신을 깨워줄 사람은 교육자와 종교인과 우리 자신들이다. 우리는 이제 도덕도 좀 생각하고 얘기해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그런 역할을 맡아야 한다. 새로운 세기에도 우리는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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