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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민심소통 의지…야당은 사정강화 의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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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수석, 폐지 2년만에 부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년 만인 7일 민정수석실 부활을 공식화하면서 신임 민정수석비서관에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내려와 김주현 신임 민정수석을 직접 소개했다. 브리핑룸에 머무른 시간은 5분 남짓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당선 직후 폐지를 선언했던 민정수석실을 설치하기로 한 이유를 자세히 밝혔다. 그러면서 “사법리스크가 있다면 내가 풀어야지 민정수석이 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질의응답 과정에서 ‘대선 공약을 뒤집은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고 “사실 정치를 시작하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민정수석실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며 “그 기조를 지금까지 유지해 왔는데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했다”고 답했다. 이어 “모든 정권에서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인데, 민정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저도 고심했고 복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백성의 뜻·마음을 살핀다’는 뜻의 민정(民情) 업무를 담당하던 수석실 폐지 후 날것 그대로의 현장 민심을 수집·보고하는 기능이 약화됐다는 의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심을 제대로 읽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윤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3월 14일 인수위 사무실 첫 출근 일성으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공언했다. 그러면서 이유로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털기와 뒷조사를 벌여 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했었다.

윤 대통령은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DJ)께서도 역기능을 우려해 법무비서관실만 두셨다가 결국 취임 2년 만에 민정수석실을 복원했다”고도 덧붙였다.

과거 DJ는 대통령 취임과 함께 사정(司正) 기능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로 민정수석실을 폐지했지만, 취임 1년4개월 만인 1999년 6월에 민정수석실을 다시 설치했다. 같은해 5월 터진 ‘옷 로비’ 사건이 계기였다. DJ의 초대 민정수석은 시민운동가 출신의 김성재(당시 한신대 교수)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다. 6개월 후엔 검찰 출신인 신광옥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후임 민정수석으로 임명됐다.

총선 낙선 이원모 재발탁…윤 대통령 최측근 다시 용산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내정한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내정한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사정기관 장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는 질문을 받고선 “국민을 위해 설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민정수석에 검사 출신을 임명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보를 다루는 부서는 꼭 법률가가 지휘하면서 법치주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며 “과거 역대 정권에서도 법률가 출신이, 대부분 검사 출신이 민정수석을 맡아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인의 사법 리스크 대응 차원이 아니냐는 질문엔 “사법 리스크가 있다면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저에 대해 제기되는 게 있다면 제가 설명하고 풀어야지 민정수석이 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주현 신임 민정수석은 뒤이어 인사말을 통해 “각 정책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국민의 불편함이나 문제점 등이 있다면 국정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가감 없이 민심을 청취해 국정 운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수사 정보의 수집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 정보 내용 등은 이미 공직기강이나 법률비서관실이 운영하고 있었다”며 “민정수석실에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는 차차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민심 제대로 읽으려는 것”

서울 출신인 김 수석은 1989년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법무부 기조실장과 검찰국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때 법무부 차관과 대검 차장을 지냈다. 김 수석(사법연수원 18기)은 사법시험 기수로는 윤 대통령보다 다섯 기수 선배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한 인사는 통화에서 “김 수석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2년 후배로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온 사이”라고 전했다.

여소야대 구도 속 야권이 각종 특검 등을 추진 중인 상황도 김 수석에겐 과제다. 여권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한 용산과 검찰 조직 간 불화설을 제거해야 하는 책무도 있다”고 말했다.

여야 반응은 크게 갈렸다. 정희용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민정수석실 신설의 모든 초점은 오직 소통”이라며 “오로지 국민을 위해 설치한 것이며, 가감 없이 민심을 청취해 국정 운영에 반영하겠다는 강한 의지”라고 평가했다.

반면에 야당은 사정기관을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최민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민정수석을 통해 민심을 청취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민정수석실은 사정기관 통제와 중앙집권적인 대통령제 강화에 활용돼 왔고 이번에도 그렇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배수진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이번에 신설된 민정수석은 ‘궁여지책 방탄수석’”이라고 했고, 주이삭 개혁신당 대변인은 “특별감찰관을 임명해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윤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을 다시 설치한다고 발표하면서 출범 당시 2실장·5수석 체제로 시작했던 대통령실도 3실장(비서실·국가안보실·정책실)·7수석(정무·홍보·시민사회·경제·사회·과학기술·민정) 체제로 확대됐다. 민정수석실에는 비서실장 직속이던 기존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이관하고, 민정비서관실이 신설된다. 다만 이날 발표한 대통령실 조직개편에선 사정기관을 총괄·지휘하는 역할을 어느 수준에서 할지, 인사 검증 기능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대통령, 야당 비판엔 주먹까지 쥐며 반박

이동옥

이동옥

윤 대통령은 신임 민정비서관에 이동옥 행정안전부 대변인을, 신임 공직기강비서관에는 검사 출신인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을 내정했다. 지난 4·10 총선에서 경기 용인갑에 출마했었던 이원모 비서관은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이에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총선에서 패배한 검사 출신 복심을 한 달 만에 재발탁하는 건 결국 검찰 장악력을 높이고 공직사회를 옥죄려는 의도이자, 총선 민의를 거스르는 것”라고 반발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은 예고에 없던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을 앉혀 사정 기관을 장악하려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반박하며, 설명 중간마다 주먹을 쥐거나 양손을 펴며 설명하는 적극적인 제스쳐를 취했다.

이원모

이원모

윤 대통령이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즉석 질의응답을 한 건 지난달 22일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을 임명할 때 이후 15일 만이다. 통상 신임 수석은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비서실장이 소개하는 것이 관례였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국민과 언론에 왜 공약을 번복했는지, 그만큼 민정수석이 필요했던 이유를 직접 설명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내에선 “소통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은 이제 시작일 뿐”이란 말도 나왔다.

윤 대통령은 공식 일정을 최소화한 채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 집중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찬성 여론이 높은 해병대 채 상병 특검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의대 정원 확대, 김건희 여사 특검 및 제2부속실 설치 등 까다로운 이슈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국민이 정말 궁금할 점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준비하자”는 당부를 전하며 관련 질문에 대한 생각을 정리 중이라고 한다. 채 상병 특검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정치적 현안뿐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비전에 대해 기자들과 진지하게 논쟁해 보고 싶다”는 의사도 전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9일 기자회견 전 집무실에서 모두발언을 한 뒤 브리핑룸에 내려와 질의응답을 받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모두발언의 경우 지난 2년간의 성과보다는 남은 3년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진심을 담으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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